이명박 어젠다 7 ④ 공기업 개혁 1년 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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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가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등에 업고 밀어붙였지만 그때 민영화된 공기업은 8개에 그쳤음을 기억하라.” 2002년 전력산업 민영화를 위한 노사정위 공동연구에 참여했던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의 충고다. 그는 “공기업들의 저항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작은 정부’ ‘공기업 개혁’이란 이명박 후보의 공약은 그의 당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청년 실업자 100만 명 시대에 ‘신이 내린 직장’에서 각종 혜택을 누려온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더 이상 그냥 둬선 안 된다는 국민적 공분이 그에게 표를 몰아줬다. 김 원장은 “정권 초 국민의 높은 지지가 식지 않았을 때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공기업 수술은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정부 때 공기업 개혁에 참여한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공기업 노조를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외환위기 때보다 개혁의 절박성은 떨어지는 반면 공기업 노조의 힘은 훨씬 세졌다”며 “여기에 총선을 앞두고 정치 논리까지 동원하면 공기업 수술은 물 건너가기 쉽다”고 경고했다.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전력산업노조는 ‘전력산업 민영화 시계’를 아예 10년 전으로 되돌릴 태세다. 김대중 정부 때 민영화를 위해 한전에서 떼어 놓은 6개의 발전 자회사를 다시 한전으로 통합하려는 것이다. 대선을 9일 남겨 놓은 지난해 12월 10일 한노총의 지지선언에 이명박 후보는 “(한전의) 발전 자회사 민영화는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며 “관련법 폐지도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다. 한노총 소속인 전력노조는 이를 빌미로 아예 민영화 백지화와 원상회복을 꾀하고 있다.

개혁 공약에 바짝 움츠러들었던 공기업들도 전력노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전력망이나 가스배관망은 같은 국가기간 시설”이라며 “전력산업 민영화를 백지화한다면 가스산업도 민영화를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기업은 노무현 정부에서 몸집을 크게 불렸다. 2002~2006년 10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빚은 109조원에서 150조원으로 38%나 불었다. 인력은 8.4%(1만2000여 명), 정부지원금은 34조원에서 48조8000억원으로 44% 늘었다. 서울대 김준기 행정대학원 교수는 “민간기업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할 때 공기업은 국민 세금으로 살만 찌웠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가 곳곳에 박아 놓은 ‘대못’ 빼기도 큰 부담이다. 김대중 정부는 다음 정부가 공기업 수술을 계속 하도록 가스공사·공항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세 곳을 민영화법으로 묶어 놓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 4월 공공기관 운영법을 만들어 이 법을 무력화시켰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는 김대중 정권에서 통폐합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것도 노무현 정부에서는 거꾸로 갔다. 수도권 재건축을 묶는 대신 신도시 건설에 몰입하면서 두 공사의 조직·인력을 50% 이상 늘리도록 용인했던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와 함께 ‘낙하산 인사’를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한성대 박영범 교수는 “숱한 공기업 개혁에도 성과가 나지 않는 건 낙하산 인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 인사가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로 오면 자신들의 약점 때문에 노조와 타협하기 일쑤”라며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 개혁은 구두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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