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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과거에 얽매일 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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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얼마 전 TV를 통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안'을 놓고 언성을 높이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법안 통과 여부를 떠나 일제강점기가 끝나고도 59년이나 흐른 지금까지 친일인사 논란을 거듭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금 내가 2004년을 살고 있는 것이 맞나'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더욱이 민생문제를 비롯해 현재 국회가 처리해야 할 법안들이 산적해 있는 상태다.

이제 와서 과거를 청산하는 법 제정을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2004년을 살아가는 나에게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괴리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현실의 문제로 꽁꽁 둘러싸인 나로서는 '친일'이니 '반민족 행위'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보다도 수년간 계류 중인 호주제 폐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소식이 더욱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곰곰 따져보니 친일행위 진상규명이 현실의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부끄러운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함으로써 굴절된 역사가 지금까지 계속돼 왔고 우리 사회의 뒤틀린 기득권층을 형성해 왔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여러 문제가 여기서 파생됐으니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안'의 국회 통과는 우리 역사상 꼭 거쳐야 했지만 여태까지도 긴 시간 지루하게 논란을 거듭해온 것에 종지부를 찍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미래 이화여대 정외과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