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헬기 추락 직전 “고도 올려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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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헬기(UH-1H) 추락 사고로 희생된 장병 7명의 유가족들이 21일 잔해가 어지럽게 널려진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현장을 돌아보며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에서 20일 추락한 UH-1H 헬기는 짙은 안개를 빠져나오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 관계자는 21일 “육군 합동조사본부 항공기조사위원회가 추락한 UH-1H의 녹음테이프를 회수해 분석한 결과 조종사들이 야간에 저고도 비행을 하다 짙은 안개를 만나자 급히 고도를 올리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군 당국이 공개한 조종사들의 대화 내용은 “(긴박한 목소리로)계기비행으로 전환하시지요. 계속 구름 속을 지나고 있습니다. 고도 올리세요. 2000피트, 3000피트…(대화 끊김)”이다. 헬기가 추락한 지점은 용문산 9부 능선(약 3000피트, 1000여 m)이어서 고도를 올리는 순간 충돌로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종사 신기용 준위는 추락 당시 용문산 인근의 기상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용문산 쪽으로 기수를 돌려 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에 따르면 신 준위는 20일 0시55분 국군수도병원에서 이륙할 때 ‘이륙한다’는 짤막한 보고만 했으며 기상에 대한 문의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사위원회는 또 사고 헬기가 안전한 6번과 44번 국도를 따라 날지 않고 용문산 쪽으로 간 이유에 대해 조사 중이다. 군 당국자는 “조종사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용문산 위를 넘어 곧장 강원도 홍천군 철정병원으로 가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전 11시20분 헬기 추락 현장인 용문산을 방문했다. 유가족들은 헬기 잔해 인근에 붉은색 페인트로 표시된 시신 발견 장소에 엎드려 오열했다. 고(故) 김범진(22) 병장의 어머니 윤용순(52)씨는 헬기 잔해 밑에서 아들이 남긴 A4 크기의 헬기 운항 기록지와 구급낭을 품에 안으며 “우리 아들 생일이 내일인데…”라며 통곡했다. 선효선 대위의 시어머니 이영자(54)씨도 며느리가 남긴 분홍색 운동화를 부둥켜 안고 “아이는 어떻게 하라고…”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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