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風水와 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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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옛것을 익혀 새로운 도리를 찾아내는 것을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하지만,옛것 가운데 선별하는 슬기와 버릴것을 버리는 용기가 있어야 정체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국민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옛것,우리 것을 발굴.개발하자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그간 외래문물의 무분별한 도입에 휘말려온 우리에게 이는 바람직한 자기복귀작용이다.그러나 이러한 과거지향적 운동이 자칫전통사회의 바람직하지 못한 폐습마저 재연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음양설(陰陽說)과 오행설(五行說)에 기초해서 땅의 형세와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관련시켜설명하는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과 관련된 현상이다.
한반도는 이미 포화상태에 가까운 인구에 일터와 집터를 주고 묘자리를 마련하는데 고달프다.남한만 따져보면 1평방㎞안에 4백명 이상의 사람들이 몰려살고 있어 오늘날 지구상에서 인구가 가장 밀집한 나라중 하나다.
북한의 경우 남한보다 약간 더 넓은 면적에 인구는 절반을 약간 웃돌아 수치상으로는 다소 여유가 있는듯 하지만 산악지대의 비중이 더욱 큰 점을 감안한다면 통일되더라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이 좁은 땅에 명당(明堂)과 길지 (吉地)가 과연 몇 곳이며,그 중에서 반만년 역사를 통해 이미 터잡지 않은 곳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간척사업등으로 늘릴수 있는 국토증가분이 물리적으로 제한되어 있고,해외이민 추진으로 인위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인구수에도 한도가 있다.남한 인구의 자연증가율은 앞으로 2020년께 정체될전망이지만,그 시기까지 인구밀도의 상승은 계속될 것이다.부존자원 가운데 이처럼 날로 희소성이 높아지고 있는 토지의 중요성에비추어 좁은 국토 늘려쓰기 방안을 찾기 위해 우리는 슬기를 모아야 하겠다.절약과 활용극대화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영농제도의 개선과 각종 산업의 원 단위(原單位)설정에 있어선 물론,도시계획.주거방식.레저시설등 모든 용도에 있어서 제한된 토지공간의 경제성을 높여야 한다.신성불가침으로 여겨지고 있는 농지제도,도시주변의 그린벨트제도 등을 인구규모및 산업구조의 변화에 걜맞는 공간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보완해야 할때가 왔다.
스위스는 부존자원활용에 가장 성공한 나라중 하나다.최근세까지도 스위스는 가난때문에 많은 인력을 해외취업에 내보내야 했다.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바티칸시티의 다채로운 복장의 스위스 용병(傭兵)이 그 역사적 유물이다.스위스가 부국(富國)으로 탈바꿈을 가능케 한 것은 화공업등 제조업의 발전이었으며 그 이후금융.관광 등 서비스산업의 신장이 기여했다.4만 여평방㎞ 남짓한 국토면적과 7백만명 못미치는 인구를 가진 스위스가 개도국에주는 교훈은 시계와 칼 등 자원절약적.기술집약적 산업이다.이처럼 부족한 자원을 아껴쓰는 한편 상대적으로 여유있고 발전가능성있는 자원을 집중개발.활용하는 전 략이 우리의 경제발전전략이 되어야 한다.
金정부는 등장이후 각방면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토이용정책발상의 근본적 전환이 없다.
특히 해마다 묘자리로 쓰이는 토지면적이 증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火葬)제도를 보편화시키는 방향으로 분묘제도를 개혁하는 일을 미루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풍수지리설 주제의 책자들에 독서인구가 몰리고 공영방송등 대중매체는 풍수프로그램을 편성해 도로건설로 잘려나간 산자락의 지세(地勢),지하철공사로 끊긴 수맥(水脈)등을 한탄하고 있고,국민들은 산마루에 박힌 일 제(日帝)쇠막대기 뽑아내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정부도 舊중앙청 건물의 철거계획에 풍수의 주장을 이용하고 있는 듯하다.우리사회는 21세기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인가,18세기로 뒷걸음치고 있는 나라인가.풍수설에 충실하려면 아마도 현재인구를 약 10분의1 정도로 줄여 토지를 과점하 는 양반사회를소생시키고 농경단계의 경제생활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자연보호는 바람직하다.그러나 자연과 인간생활의 조화로운 공존이 불가피하다.좋은 터를 찾는 풍수도 결국 토지의 이용이며 자연훼손이다.우리는 토지의 근대산업사회적 이용을 反풍수적인 것으로 몰아세우는 시대착오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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