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명박 특검의 '식당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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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호영 ‘BBK 특별검사팀’이 지난 일요일 서울 시내 한정식 집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조사를 벌였다. 역대 검찰은 물론이고 특검사상 유례없는 ‘식당 조사’였다. 특검팀의 당선인 조사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원칙을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부적절한 수사 방법과 그 형식 때문에 수사 결과를 국민들이 온전히 받아들일지 우려된다.

특검팀은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항을 놓고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선인의 법적 신분과 그를 조사해 혐의가 드러날 경우 소추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법조계의 해석이 엇갈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특검팀은 당선인에 대한 조사 방침을 확정했다. 당선인 신분을 고려해 미리 노트북 컴퓨터에 질의서를 작성한 뒤 ‘식당 조사’ 과정에서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경호상 안전이나 보안유지라는 면을 백분 감안하더라도 조사 장소를 식당으로 택한 것은 부적절했다. ‘장소가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선택은 특검이 이미 기가 꺾였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특검팀원들이 불과 2시간여 동안 당선인을 조사한 뒤 꼬리곰탕 식사를 함께 한 것도 국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해준 독립성과 당당함을 유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이 조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서자 몇몇 동료가 크게 반기며 격려했다는 부분에선 어이가 없어진다. 법적 절차와 판단에 따라 조사했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좌고우면할 요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인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우리는 이번 조사가 “법을 지키겠다는 소신으로 조사에 응했다”고 밝힌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쳤다고 본다. 기왕에 조사를 받으려면 장소까지도 당당했어야 한다. ‘식당 조사’라는 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선인 보좌진의 사려 깊음과 신중함이 필요했다. 이런 수사 태도가 특검팀에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수사를 열심히 하고도 스스로 수사의 신뢰성을 흠집 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