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천만원 직장인 '納稅 일과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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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직장인들은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일까.

노영훈(46)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이 납세자의 날(3월 3일)을 맞아 이를 알기 쉽게 계산한 '하루 납세 시간표'를 만들었다. 이 시간표를 보면 우리 생활의 거의 전 분야가 세금과 관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전 7시. 盧박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치약.칫솔.비누는 물론 수건.화장실의 두루마리 휴지까지 가격의 10%씩 붙어있는 부가가치세를 매일 10~20원씩 내면서 그의 '세금 일과'는 시작된다.

오전 8시. 쏘나타 승용차로 출근하는 盧박사는 매일 자동차세 1538원에다 자동차를 살 때 납부한 차량 등록.취득세와 특별소비세 등으로 2300원(5년간 보유 기준)을 낸다. 하루 30여㎞를 달리는 데 사용한 휘발유(하루 평균 2.5ℓ)에도 특소세(ℓ당 630원)와 특소세의 15%를 내는 교육세.주행세 등 2130원이 따라붙는다.

오전 9시. 바삐 오느라 아침을 거른 盧박사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테이크 아웃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오늘 할 일을 챙겨본다. 커피에 붙는 특소세는 2000년부터 폐지됐지만 여전히 부가세(10%)는 내야 한다. 커피 한잔의 여유에도 200~300원의 세금이 여지없이 매겨진다. 담배에는 갑당 510원의 담배소비세가 붙는다. 정오가 되자 일이 밀려 5000원짜리 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했다. 식사 값에 포함된 부가세를 그는 오늘도 성실히 납부했다.

오후 2시. 출장갔다 오느라 못 챙겼던 월급명세표를 확인해 보니 곳곳에 세금이다. 얼추 계산해 보니 5000만원대의 연봉을 받는 그가 매일 근로소득세와 주민세로 내는 세금은 1만3000원이나 된다.

오후 10시.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늦어진 퇴근길에 직장 동료와 컬컬해진 목을 소주 한잔으로 달랬다. 술집 주인이 내민 계산서에는 부가세 10%가 어김없이 붙어 있다. 1000원짜리 소주 한병에 붙는 주세는 약 430원. 양주도 소주와 세율은 같지만 술값이 워낙 비싸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오후 11시. 집으로 돌아와 TV를 켜던 그는 문득 얼마 전에 TV와 에어컨을 사면서 특소세(에어컨 18%)와 부가가치세(10%)도 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밤 12시. 그는 "그래도 이만한 집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하루 동안 아파트의 등록.취득세(5년 보유 기준)로 5800원, 재산세.종토세 등으로 1200원 등 모두 7000원을 냈다.

연봉이 5000만원인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하루에 약 14만원을 벌어 평균 2만8000원 정도를 세금으로 낸다. 5년 전과 비교하면 5000원이 늘어났다. 주 1~2회 있는 술자리와 가족들이 공동으로 쓰는 가구나 식료품 등 가계비에 붙는 간접세 등을 더하면 세금은 더 늘어난다.

올해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총조세 부담액/국내총생산액)은 22.7%(추정). 이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8시간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적용해 보면 출근 후 오전 10시50분까지 매일 두시간가량은 각종 세금(세금+지방세)을 내기 위해 근무하는 셈이다. 1년간으로 환산하면 연초부터 3월 22일까지는 세금을 내기 위해 일한다는 얘기다.

3월 23일은 세금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소득을 벌어들이는 '조세해방일'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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