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권 시비 盧 '입' 묶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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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선거법위반 결정을 내린 유지담 중앙선관위원장(左)과 선관위원들이 3일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전체위원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김성룡 기자]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노무현 대통령 발언 위법 결정은 법리적 해석을 했다고는 하지만 다분히 정치적이다. 법을 위반했지만 제재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결정 때문이다. 선관위 전체회의는 지난달 24일 방송기자클럽에서 한 盧대통령의 언급이 선거법 제9조(공무원의 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럼에도 전체회의는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위반의 소지가 있는 경우 선관위가 취할 수 있는 주의.경고.고발 등 9단계의 조치 중 하나도 적용하지 않았다. 다만 선거중립의무를 준수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로만 했다. 이 공문은 지난해 12월 30일 선관위가 盧대통령에게 보낸 '공명선거 협조요청'보다도 엄격성이 떨어진다. 선관위의 조치라기보다 업무 협조문인 것이다.

정치권에서 선관위원장에 대해 탄핵을 하겠다는 으름장 속에 진행된 전체회의는 처음부터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다. 9인의 중앙선관위원은 대통령이 임명한 3명, 국회에서 선출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으로 구성됐다. 위원들은 회의에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것이므로 적극적인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고 단순한 의견개진에 해당한다"는 견해와 "특정선거와 특정정당을 언급한 만큼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돼 선거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회의는 선관위원 전체회의 사상 가장 긴 6시간여의 마라톤회의가 됐다. 결국 사전선거운동(선거법 58조 등)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정을 내리면서 선거법 9조는 위반했다는 엇갈린 결정을 내렸다. 관행상의 합의제 원칙도 무너졌다. 결국 이례적으로 표결수단이 동원됐다. 사전선거운동 부분은 5대 3으로 위반 아님을, 선거중립 의무에 대해선 6대 2로 위반으로 결론지었다. 결과적으로 야당의 압박과 대통령의 위상을 고려해 양쪽의 손을 동시에 들어준 셈이다.

대통령에게 역사상 첫번째로 선거법 위반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盧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 등이 줄어들지 관심이다. 또 선관위 측은 이런 결정에 따라 선관위원장에 대한 탄핵 움직임이 수그러들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중앙선관위원장이 탄핵 대상으로 거론된 것은 1963년 선관위 설립 이후 처음이다.

이철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 문제된 대통령 발언

열린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2월 24일 방송 기자클럽 회견)

*** 중앙선관위 발표문

대통령 취임 1주년 특별회견에서 행한 대통령의 선거관련 발언은 그 전후 문맥과 의미 등을 종합해 볼 때 특정 정당의 지지를 나타내는 취지의 내용으로 볼 수 있으나 정당 가입은 물론 광범위한 정치활동이 가능한 대통령이 기자회견 석상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것임을 감안할 때 사전선거운동 금지규정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정치적 활동이 허용된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선거에서의 중립의 의무를 가지는 공무원으로서 앞으로 선거에서 중립의무를 지켜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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