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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라 공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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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중세 시대의 종말은 보통 비잔틴 제국의 멸망으로 잡는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오스만 튀르크에 함락됐다. 붕괴의 전조는 이미 1389년부터 시작됐다. 그 유명한 코소보 전투다. 그 넓은 들판에서 세르비아의 기독교 연합군과 오스만 튀르크의 이슬람 군대가 맞붙었다. 양쪽 왕이 모두 희생될 만큼 장렬한 싸움이었다. 이 역사적인 전투는 튀르크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때 등장하는 비운의 여인이 있다. 세르비아의 아름다운 공주인 올리베라 데스피나(1372~1444). 세르비아 역사가들은 그녀가 18세 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튀르크의 후임 술탄과 강제로 결혼했다고 가르친다. 술탄이 그녀를 하렘으로 끌고가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는 것이다. 올리베라는 그 후 30세 때 또 한 번 수모를 겪는다. 튀르크를 침공한 티무르에게 잡혀간 것이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티무르가 잔치 때마다 그녀를 불러내 알몸으로 와인을 따르게 했다고 주장한다. 올리베라 공주의 인생유전은 세르비아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역사적 비극이 따로 없다.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올리베라의 정략결혼은 자구책이었다. 코소보 전쟁 직후 헝가리가 침공해 오자 세르비아가 어제의 적인 튀르크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무엇보다 튀르크의 술탄은 그녀를 지극히 사랑했다. 그녀에게 기독교를 허용했고, 세르비아에는 파격적인 자치를 선물로 안겼다. 티무르가 올리베라를 괴롭힌 대목도 ‘글쎄요’다. 세르비아인들 사이에 입으로 전해진 내용일 뿐이다. 이슬람권 사료는 정반대다. 티무르가 포로인 술탄과 올리베라를 극진히 대접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술탄이 죽자 티무르가 크게 슬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올리베라는 72세의 천수를 누렸다. 세르비아 측 해설은 믿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코소보가 17일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발칸반도가 다시 술렁이고, ‘인종청소’ ‘무차별 공습’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떠오른다. 코소보 전투 이후 수백 년간 힘의 공백을 틈타 이곳에는 이웃 알바니아의 이슬람교도들이 밀려왔다. 이제는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도다. 그렇다고 세르비아가 호락호락 독립을 허용할 것 같지 않다. 그들에게 코소보는 민족적 성지다. 하지만 증오를 가르치면 증오를 낳는다. 세르비아 속담에는 ‘진실은 딱딱한 호두 속에 있다’고 한다. 힘들겠지만, 세르비아 스스로 비뚤어진 민족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호두 속의 진실이 보이고 평화가 온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