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소보, 전격 독립선언 … 발칸 위기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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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인 수만 명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미국과 영국 등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해준 나라의 국기를 흔들고 있다. 코소보 의회는 독립선언을 위한 특별회의를 시작했다. 자쿱 크라슈니키 의장은 이날 “국제사회의 협력 아래 모든 이를 위한 민주국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프리슈티나 AFP=연합뉴스]

‘발칸의 화약고’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코소보는 독립을 위해 1990년대 중반부터 유혈투쟁을 벌였고 지난해 말 유엔의 중재마저 무위로 돌아가자 독립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코소보 의회는 17일 오후 3시(현지시간) 수도 프리슈티나의 국회의사당에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독립을 공식 선언했다. 나라 이름도 코소보의 알바니아어 발음인 ‘코소바’로 바꿨다. 독립이 선언되자 코소보 시민들은 기뻐하며 시내 곳곳에서 불꽃놀이 등 자축 행사를 벌였다.

그러나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독립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세르비아 정부는 독립 선언과 동시에 행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무력 사용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는 서방국과의 단교 ^코소보에 대한 전력 공급 중단 ^인터넷·전화망 차단 등의 조치를 검토 중이다. 16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도심에서는 1000여 명의 시민이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코소보 독립 선언을 지지하는 서방 측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서방 세력의 확대를 우려하는 러시아도 코소보 독립을 반대하고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15일자 성명에서 “서방에 의해 코소보의 일방적 독립이 인정된다면 그루지야 내 두 자치공화국에 대한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게 될 것”이라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친서방 정책을 펴고 있는 그루지야 내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야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럽연합(EU)의 27개 회원국 중 20개국과 미국은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다. EU는 16일 2000명의 경찰·사법 요원으로 구성된 민간 임무단의 코소보 파견을 최종 승인했지만,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거주 지역인 미트로비차의 세르비아계 지도자 밀란 이바노비치는 EU 요원 파견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뿌리 깊은 갈등=세르비아인들은 코소보를 반드시 지켜야 할 성지로 여긴다. 코소보는 14세기 무렵 생긴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1389년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으로 10만 명이 넘는 세르비아인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시 패배한 세르비아인들은 북쪽으로 쫓겨났고, 이슬람교로 개종한 알바니아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가 현재 자신과 적대적인 알바니아공화국에 편입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현재 코소보 주민의 약 90%가 알바니아계다. 98년 코소보 사태도 결국 알바니아계 주민과 세르비아인 간의 갈등 때문에 일어났다. 코소보 독립을 주장하는 알바니아계 게릴라 조직들이 90년대 중반부터 세르비아인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자 유고연방 정부군이 잔인하게 진압했다. 당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98~99년 알바니아계 주민 1만 명 이상을 학살하고 80여만 명을 추방하는 ‘인종 청소’를 했다. 나토와 유엔이 공습 끝에 비극을 중단시켰지만 ‘세르비아 내 유엔관리 자치주’라는 어정쩡한 지위는 분쟁의 불씨가 돼 왔다.  

원낙연·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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