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Earth Save Us] 도쿄 버스 정차 땐 ‘엔진 자동 OFF’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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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지방으로 떠날 버스 40여 대가 10~20분씩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 승차장 뒤편 대기 차량들 가운데는 30분 이상 공회전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오전 서울역 뒤편 서부역 쪽 도로변에서 정차 중이던 최모(42·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도 시동을 켠 채였다. 그는 “대구로 돌아가는 장인·장모를 배웅하러 간 아내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며 “주차장에 세우기도 번거롭고 날씨가 쌀쌀해 히터를 켜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선 30분마다 시티투어 버스가 출발한다. 12일 오전 서 있는 버스 두 대는 모두 시동이 걸려 있었다. 차 한 대에는 승객 두 명이 있었고 다른 한 대는 빈 채였다. 두 차 모두 운전기사는 없었다. 매표소 여직원은 “기사들은 식사하러 갔고, 차 안이 추울까 봐 시동을 걸어 놓았다”고 말했다. 30분 동안 공회전을 한 뒤 버스 한 대는 승객 없이 출발했다.

자동차 공회전으로 인한 연료 낭비와 대기오염이 여전하다. 2004년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각 시·도는 공회전을 제한하는 조례까지 만들었다. 그래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요즘 자동차는 전자제어식이어서 추운 겨울철에도 휘발유 차량은 1~2분, 경유 차량은 2~3분 공회전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여름철엔 10~15초면 충분하다.

◇겉도는 단속=서울시 조례에서는 터미널·차고지·주차장 같은 공회전 제한 장소에서는 휘발유차 3분 이상, 경유차는 5분 이상 공회전을 못 하게 돼 있다. 기온이 영상 5도 미만이거나 영상 25도로 냉난방이 필요한 경우도 10분 이상 못 하게 돼 있다.

고속버스 운전기사들도 이런 조례는 안다. 그래도 안 지킨다. 지난해 말까지 3년간 서울시는 공회전 위반 차량을 13만7766건 적발했다. 이 중 5만원의 과태료를 물린 건수는 23건이다. 다른 시·도는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가 없다.

정덕기 환경부 교통환경관리 과장은 “과태료를 물리려면 운전자가 ‘이제 출발하려 했다’고 떠나 버린다”며 “단속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민의식이 달라지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휘발유 승용차는 연 240일 기준으로 하루 5분씩 공회전을 줄이면 3만9200원을 아낄 수 있다. 보기에 따라 서는 작은 돈일 수 있다. 이게 국가적으로 모이면 달라진다. 전국 1643만 대 자동차가 공회전을 하루 5분 줄이면 연간 5050억원의 기름값이 절약된다는 게 에너지관리공단의 분석이다. 시동을 껐다가 다시 걸더라도 연료 소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도 연간 101만t 줄일 수 있다.

전국의 자동차 10%가 하루에 10분씩 공회전을 하면 미세먼지·아황산가스·질소산화물 같은 대기오염 물질이 연간 2257t씩 배출된다. 건강과 재산 피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617억원이다.

◇외국에선 철저히 규제=일본 사이타마현 구키(久喜)시에서는 2001년 8월부터 택시·버스를 포함해 자동차를 주차하거나 차에서 떠날 때는 반드시 시동을 끄도록 하고 있다. 도쿄의 도심 노선 버스에는 ‘저공해차, 아이들링(공회전) 스톱 버스’란 팻말이 달려 있다. 그 아래에는 ‘정차 시에는 엔진이 멈춥니다’란 설명이 붙어 있다. 이들 버스에는 공회전을 방지하기 위해 아예 ‘공회전 스톱 기능’이 달려 있다. 버스가 멈추고 기어 레버가 ‘중립’ 위치일 때 클러치에서 발을 떼면 엔진이 자동적으로 멈추도록 하는 장치다. 다시 클러치를 밟으면 엔진 시동이 자동으로 걸린다. 2000년 무렵 교체를 시작해 중·대형 버스의 경우 거의 100%가 이 같은 기능을 가진 신형차로 전환됐고, 연료 소비를 15%가량 줄일 수 있게 됐다.

1984년 공회전 방지 제도를 도입한 미국 워싱턴에서는 기온이 영상인데 3분 이상 공회전을 하면 100달러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영국 런던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기온 5~27도 내에서 5분 이상 공회전을 하면 과태료를 부과한다.

독일·프랑스의 관광지에선 관광버스들이 한여름에도 승객이 모두 탈 때까지 에어컨을 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다. 호텔 앞에서도 시동을 켠 채 대기할 수 없다.

주한 영국대사관 토니 클렘슨 기후변화팀장은 “유럽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공회전을 길게 하는 것 같다”며 “그게 다 낭비 아니냐”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찬수 환경전문기자(팀장), 김현기(도쿄) 특파원, 강갑생(사회부문)·이수기(국제부문) 기자, 조영갑(단국대 언론정보학과 4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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