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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경제는 지금…] 4. 대구·경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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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올해 대구의 최우선 시정목표는 '기업하기 좋은 도시'다. 경북은 경북대로 '경제제일 도정'을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두 지역경제의 올해 화두는 외자 유치다. 연초부터 도지사가 해외로 나가 직접 기업유치 활동을 펴는 등 외국인 투자유치에 민관이 발벗고 나섰다.

대구.경북 출신의 전문가 네트워크로 지난해 10월 태동한 '21세기 낙동포럼'(운영위원장 이정인)은 지난달 27일 대구파크호텔에서 중앙일보 후원으로 '기업하기 좋은 지역 만들기'란 주제의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은 손병두 전 전경련 상임고문의 주제강연에 이어 낙동포럼 이정인 위원장의 사회로 각 분야 10명의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는 순으로 진행됐다.[편집자]

◇이정인 위원장=대구.경북지역을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토론을 통해 대구.경북의 외국인 투자 유치에 유익한 대책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

◇천진환 소장=어려울 때일수록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난해에 중국 칭다오(靑島)시가 90만평 규모의 자유수출무역공단을 열었다. 설계를 이탈리아와 프랑스 업체에 맡기는 등 '크고(太) 수준높고(高) 빠른(快)' 서비스로 차별화를 부각시켜 외국 기업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중국 각 성(省)의 부성장들은 거의 30대 경제전문가들이다. 이는 지방정부의 경제 활성화에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대구.경북도 잠재적인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이테크 섬유나 한방산업의 과학화 등이 그것이다.

◇다마쓰쿠리 미노루 부사장=일본의 19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경제침체기였지만 최근 회복단계에 들어섰다. 규제 완화, 산.학 연계 강화 등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큰 역할을 했다. 중소기업들의 기술개발 활동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도레이도 섬유를 하이테크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일본 기업의 관점에서 한국의 강점은 높은 교육수준, 예의바른 태도, 향상과 성취에 대한 높은 동기, 치안상태 등이다. 특히 높은 기업가 정신을 부각시켜 외국 기업과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러나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한국은 아직도 담보대출에 머물러 있지만 일본은 국가가 지적 재산에 대해서도 대출조건을 좋게 해준다.

◇이영세 총장=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 제조업의 중국 탈출은 시대적인 추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어떤 기업들을 다시 일으키는가에 있다. 요즘 학생들은 사회복지.소프트웨어 산업으로 몰린다. 인력을 특정 분야로 몰 수는 없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는 것도 맞지 않다. 따라서 요즘의 일자리 창출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대구는 교육.의료.문화 방면에서 강하다. 올해 대구사이버대 지원자 1500명 중 700명이 특수교육학, 300명이 사회복지 분야에 지원했다. 미국은 80년대 외국으로 나갈 산업은 다 가도록 두고 대학.의료.관광.금융 등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에 승부를 걸었다. 중국이나 대만의 부유층들이 대구로 병을 치료하러 오도록 의료산업을 일으키면 의료기기산업 등 연관산업도 함께 클 것이다.

◇이평복 팀장=외국 기업들이 투자를 하기 전에 가장 참고를 많이 하는 것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는 업체들의 의견이다. 얼마 전 경기도 오산에 있는 한 외국인 업체에 택지수용 명령이 떨어졌다. 엄청난 규모의 장비산업인지라 이 업체는 느닷없는 명령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해 말 경기도 평택의 한 외국 기업은 3개월째 노조와 극한대립을 하고 있었지만 해당 지자체는 현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업 유치를 떠들지만 정작 하급직으로 내려가 보면 외자 유치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기 부서의 이해관계,법과 규정에만 얽매여 있다.

기초지자체로 가면 더 심각하다. 일본 YKK사가 3000만달러짜리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지만 기초지자체의 인허가 지연으로 애를 먹고 있다. 이 업체는 그래도 보복이 두려워 불평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백석동 지점장=지난해 코스닥 등록업체 47개 중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2개 업체만 통과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벤처기업 자본시장 5000억원 중 대구.경북은 2%의 점유율을 보였다. 초기에는 지역에서도 화신제작소.경창산업 등 벤처 성공사례가 많았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지역경제의 성장동력이 의문시된다. 밀라노 프로젝트도 실질적인 성과없이 흐지부지된 상태다. 전통기업의 변신을 위해서는 연구.개발(R&D)이 요건이지만 지역 특허기술의 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박용일 대표=24년 전 외국 기업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기업으로 시작해 지역에서 17년간 사업을 해왔으나 정보에 어둡고 고급 인력의 지방근무 기피로 기술개발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경북대 출신이더라도 서울의 대기업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면 대구로 데려오는 데 인건비가 45% 더 필요하다. 공무원들의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관공서를 드나들 때마다 답답함을 느낀다. 지방정부에서도 인력의 적재적소 배치가 시급하다. 지방에서 외로운 싸움을 거듭해야 하는 중소기업들에 대해 더 큰 이해를 기대한다. 대구와 경북의 경제단위는 하나인데도 투자가 중복되고 갈등을 빚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권대우 사장=일본 도요타 자동차가 나고야 경제를 살린 사례를 되새겨야 한다. 오늘 토론에 오기 전 중소기업을 하는 친구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가만히 있다가 오라"고 하더라. 공무원들은 얘기를 듣는 척만 할 뿐, 바뀌는 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젊은층의 반기업 정서, 노사문제에 대한 관점도 산학협동을 통해 미리미리 해결해 나가야 한다. '대구에서는 노사분규가 없습니다'를 브랜드화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이철우 교수=지방화 시대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 운동을 촉발시켰다. 이를 꼭 외자유치와 등식화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지대.노동력.세금 등에 대한 중국의 경쟁력은 사실 쫓아가기 힘들다. 지식기반산업 시대이므로 대구3공단의 단순인력 구인난 등은 사실 대책이 없다. 장기적으로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산학협력 구축이 필요하다. 대학의 이해관계를 떠나 지역산업을 떠받칠 수 있는 산학협력이어야 한다.

◇장재홍 연구위원=대구와 경북의 협력이 필요하다. 현재로서는 대구와 경북의 홍보물도, 장기 발전구상도 따로 돼 있다. 지식기반 산업의 추세에 맞춰 공무원의 전문성도 강화돼야 한다. 지역경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이노베이션 챔피언이 있어야 한다. 이는 지방정부가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뜻이다. 용역사업의 납품 때도 납품서 외에 준공검사서 등을 중복으로 요구하는 행정의 경직성도 바뀌어야 한다.

◇이종태 부장=중앙일보는 2월 초 '한국을 비지니스 메카로'라는 기획시리즈 기사를 통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외국 경제단체 책임자와 외국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했다. 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노사문제였다. 경남도가 98년 투자유치과를 설치하고 민간인을 책임자로 스카우트해 외자유치에 나서서 성공한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서류 접수에서 공장 착공까지 49일 걸리는 원스톱 서비스로 외국 기업인들을 놀라게 했다. 2001년 경남도가 BAT코리아의 1억달러 투자를 유치할 당시 외국인 사장은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가 되려면 경남도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대구=정기환 기자

<사진설명>
기업하기 좋은지역 만들기 포럼에서 토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왼쪽부터 천진환 소장,이정인 위원장(사회),다마쓰쿠리 미노루부사장. 이평복 팀장, 이영세 총장, 권대우 사장, 이철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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