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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기자와도란도란] “펀드 환매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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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펀드 환매해야 하나.”

요즘 주변 지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연초 급락했던 주가가 최근 반등하자 조바심내는 투자자가 더 많아졌다. 상전벽해다. 불과 서너 달 전만 해도 사정은 정반대였다. 전 세계 증시가 ‘겁 없이’ 오를 때는 “꼬불쳐 둔 펀드 좀 귀띔해 달라”는 성화에 시달렸다.

펀드 환매 여부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되묻는다. “어디 급하게 돈 쓸 곳 있으세요?” 그럼 십중팔구 “그런 건 아니고…”라며 말끝을 흐린다. 속셈인즉 쓸 곳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단 팔고 주가가 바닥까지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다시 사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백 번 맞는 말이다. 펀드나 주식이나 쌀 때 사서 비싸게 팔기만 하면 돈을 번다. 많이 오른 펀드를 팔아 저평가된 펀드로 갈아타기를 반복하면 1년 수익률 100%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본지가 지난해 수익률 1등을 한 ‘미래에셋디스커버리주식형’ 펀드 가입자 700여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서도 입증됐다(본지 2월 11일자 E2면). 시장의 등락에 따라 발 빠르게 움직인 투자자보다 ‘곰’처럼 돈을 묻어둔 투자자의 수익률이 훨씬 높았다. 펀드의 누적 수익률이 90%를 웃도는 기간에도 환매와 가입을 반복한 투자자는 오히려 원금을 까먹었다. 펀드 투자와 같은 장거리 경주에선 약삭빠른 토끼보다 우직한 거북이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얘기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주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환매를 하고 나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다시 펀드에 가입하기 어렵다.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는 건 아닌지 불안해서다. 결국 망설이고 망설이다 시장이 꼭짓점에 도달할 무렵에 가서야 ‘도저히 못 참겠다’며 돈을 넣었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런 엇박자 몇 번이면 어느 새 통장 잔액은 바닥을 드러낸다. 투자자는 손해를 봐도 수수료는 어김없이 떼가기 때문이다.

바닥 때 사서 천장 때 파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걸 깨달을 때 비로소 투자의 문리가 트인다. ‘펀드 환매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받을 때 그냥 웃으면서 답할 수 있다. “그냥 놔두세요.”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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