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수석 인사로 본 ‘이명박 정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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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07면

생각은 같지만

경제성장 ‘사두마차’ 보폭 달라 삐걱거릴 수도

강만수 장관 내정자는 지난 두 정권을 흔히 ‘잃어버린 10년’으로 비유한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돼 이미 장기불황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소비와 투자를 옥죄는 평등주의 정책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김중수 수석 내정자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내면서도 잠재성장률 하락과 경제 심리 위축을 줄곧 경고해 왔다.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복지를 통한 성장’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란 말도 했다.

곽승준 수석 내정자와 이윤호 장관 내정자도 마찬가지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규제를 대폭 풀어야 한다는 데에도 의견이 일치한다. “규제의 전봇대를 뽑아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곽 내정자)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을 풀어 대기업을 자유롭게 하고 인위적 경기 부양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같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도 대동소이하다. 강 내정자는 신문 칼럼 등을 통해 “정책 실패와 소수의 투기꾼 잘못을 선량한 다수에게 떠넘긴 정책”이라고 비판해 왔다. 김 내정자도 지난해 국제경제학회 발표에서 “국지적 폭등을 전국적 정책의 목표로 삼아 건설시장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귀착됐다”고 지적했다. 교육 문제에선 한 목소리로 ‘평등주의 탈피’를 주장한다. “대량생산시대에 적합한 교육으론 지식경제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김 내정자)는 인식이다.
 
해법엔 차이

비슷한 총론에도 불구하고 경제 사령탑들의 성향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곽승준 내정자는 이 당선인처럼 ‘따뜻한 시장경제주의자’를 자처한다. 친기업 정책과 투자 활성화를 통해 성장률을 높여 나가는 동시에 경쟁 탈락층과 서민층 지원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구제, 서민 생활비 30% 절감 등의 공약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김중수 내정자는 적극적 개방·경쟁 유도론자다. 1995년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주도했던 그는 법률·의료·교육까지 개방해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야만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투자를 늘리면 고용이 늘어나 성장률이 높아진다”는 곽 내정자와 달리 “자본·노동의 성장 기여도는 제한적이며 앞으로는 생산성 향상이 관건”이란 생각을 밝힌 바 있다.

강만수 내정자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 기업에 대한 간섭은 줄이되, 정부가 환율·금융·재정을 통해 투자와 소비를 적극적으로 진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에 대해 “정부 내 조직이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해 통화정책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이 같은 차이는 각론에서도 나타난다. 강 내정자는 법인세·종합부동산세·양도소득세 등 감세에 적극적이지만 곽 내정자는 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종부세 인하에 대해 부정적이고, 법인세 인하도 중소기업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업은행 민영화는 곽 내정자가 적극적인 반면 강 내정자는 신중한 입장이다.
 
관계 정립이 숙제

경제 부처 관료들은 요즘 때아닌 도형 공부에 한창이다. 자신들이 모시게 될 수석·장관들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될지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사각형 이론과 삼각뿔 이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사각형 이론은 대선 캠프의 핵심 참모인 곽·강 내정자가 나란히 위에 있고 김·이 내정자가 아래에 있는 구도다. 당선자와의 친밀도, 공약 기여도 등이 높은 앞의 두 사람이 대선 이후 발탁된 실무형 인재인 뒤의 두 사람보다 정책 결정과 실행 과정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리라는 것이다.

삼각뿔 이론은 곽 내정자가 정점에 있고 나머지 세 사람이 아래에서 받치는 모양새다. 당선인의 ‘좌뇌’ ‘정치적 아들’로까지 지칭되는 곽 내정자에게 더욱 무게감이 실릴 것이란 관측이다. 삼각뿔에서 사각형으로 바뀔 것이란 예상도 있다. 역대 정권 초기 교수 출신이 부각되지만 결국 실무 능력과 조직의 힘을 뒤에 업은 관료 출신이 세를 장악했다는 경험론이 근거다.

관료들의 이런 모습은 아직 경제팀의 역할 분담이 뚜렷하게 각인되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관료들은 그동안 수석과 장관의 역할이 대통령 의중에 따라 시소를 오르내리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다. 기획과 조율로 나뉜 국정기획·경제수석의 경계도 모호해지기 쉽다. 시스템보다 ‘누가 더 센가’에 따라 정책 결정과 실행의 중심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내정자를 제외한 주요 정책 결정권자들의 소신이 뚜렷한 편이라는 점도 이를 부채질한다. 정책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실행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관성도 문제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일관성이다. 네 사람은 그동안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정책이 경제주체들에게 어떤 신호를 보낼지 숙고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면에서 최근 인수위의 잇따른 ‘할인 시리즈’는 이들이 추진하려는 ‘시장경제’에 대해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통신요금 인하가 대표적이다. 인수위가 구성되자마자 인하 대상과 폭은 물론 시기까지 섣불리 발표했다가 부랴부랴 ‘민간 자율로 유도한다’고 후퇴했다. ‘보이지 않는 손’인 가격에 인수위가 직접 개입한다는 인상만 남겼다. ‘출퇴근 시간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 논의’도 당선인이 서울시장 시절 내놓은 작품인 ‘버스 중앙차로제’와 정면으로 상충된다. 승용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중앙차로제는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돼 서울시가 꾸준히 구간을 확대하는 중이다. 전형적인 ‘칸막이 규제’의 하나이지만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통행료 인하는 버스 타던 사람에게 다시 승용차로 출퇴근하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유류세 인하도 줄어든 세금만큼 실제 소비자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취임 전 인하’ 약속이 물거품이 됐다. 당선인의 취임 전이나 초기에 시행착오가 없을 순 없겠지만 잦아지면 정책 신뢰성이 낮아진다.

“(장기나 바둑을) 직접 두긴 어려워도 훈수는 쉽다.” 강만수 내정자가 몇 년 전 한 칼럼에서 관료생활 당시 정책 선택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첫 경제팀이 곧 절감하게 될 말일지도 모른다.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훈수꾼’에서 나라 살림을 책임진 ‘대국자’의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 임기영 교수는 “경제팀부터 ‘따뜻한 시장경제’의 개념을 확실히 공유하고 정부와 기업의 역할, 자원의 배분 순위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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