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폐기물로 버려진 숭례문 잔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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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관리 부실로 600년 역사의 국보 1호를 한순간에 불태우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숭례문 잔해를 일반 쓰레기처럼 폐기 처분했다는 소식은 한심하다 못해 경악스럽다. 문화재청 직원들이 타다 남은 자재들을 폐기물 처리장에 내다 버리고, 소방 당국은 굴착기로 현장을 마구 파헤쳤다고 한다. 방화로 숭례문이 허무하게 주저앉은 지 사흘 만의 일이다. 역사에 씻지 못할 죄를 참회하는 국민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을 때 화재 현장 가림막 안에서는 다시 한번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는 역사 훼손이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당국은 얼마나 더 곤욕을 치러야 정신을 차릴 건가. 소방 직원들은 몰라서 그랬다 치자. 역사 보존을 책임진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불탄 문화재 잔해를 수거할 때 숯덩이 하나라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는 고고학의 상식을 무시했다.

숭례문이 국보면 불에 그슬린 기왓장 조각 하나도 보물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조상의 묘를 이장하면서 흩어진 유골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도 관계 당국은 또다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문화재청 측은 “실제로 현장을 정리하는 것은 중구청”이라고 발뺌했다고 한다. 이러니 네티즌들이 ‘숭례문 5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관계 당국을 비난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그리 서두르는가. 당국은 불이 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복원에 예산과 시간이 얼마나 든다는 전망과 함께 조속한 복원을 거듭 강조했다. 이번 망발도 이런 조급함에서 빚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숭례문은 우리의 보물 1호다. 일반 건물이 불탔을 때처럼 서둘러 잔해를 치우고 새 집을 올리듯이 처리해서는 안 된다. 시일이 오래 걸리더라도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고 필요하면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야 한다. 이웃 일본의 경우 1949년 호류사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숯덩이가 된 기둥 하나까지 수습해 박물관에 보존했다고 한다. 금당의 벽화를 새로 복원할지를 놓고 몇 년간 고민할 정도였다. 조상들과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숭례문 복원작업을 위해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