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회의원 수 증원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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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놓은 안에 따르면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 수가 300명을 넘어서게 된다. 인구변동에 따라 현재의 지역구(243명)는 2~4명 늘리면서 비례대표(56명)는 줄이지 않는 것이다. 국회는 16대에 273명이던 정원을 4년 전인 17대에 299명으로 늘렸는데 이번에 다시 증원을 시도하는 것이다. 혹자는 의원 수 명이 느는 게 무슨 큰 문제냐 하겠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이명박 당선인이 정부조직의 축소를 추진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거품을 줄이고 효율을 늘리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데 국회의 움직임은 거꾸로 가는 것이다. 300이란 숫자의 상징성도 있어 300을 넘는 것은 국회의 역주행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회가 높은 생산성과 성실성을 보여줘 왔다면 몸집이 커지는 데 대한 반감이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국회는 사회의 다른 분야에 비해 매우 후진적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성실하지 못하다. 출석인원이 적어 본회의나 상임위가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지난 2일엔 통외통위가 한·미 FTA 비준안을 처음으로 논의하려 했으나 정원 26명 중 6명만이 출석해 결국 회의가 무산되기도 했다. 연금개혁도 지지부진하다.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엔 손을 놓으면서 외유나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는 바쁘다. 영국 의회에서는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은 의석에서 의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인다. 한국 국회의 널찍한 책상과 의자는 텅 비어 있을 때가 많다.

지역구를 늘려야 한다면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인구가 줄어드는 농촌의 지역구를 줄이는 방안도 생각해 봄직하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인구의 상한과 하한의 비율을 3대 1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른바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높이기 위해 길게는 2대 1로 줄이는 것도 제안했다. 의원 정수를 키우지 않으면서 이를 실현하는 길은 인구가 느는 도시 지역의 의원 수를 적절히 유지하면서 인구가 적은 농촌을 줄이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