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돈내고 뺨 맞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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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의 경수로 지원문제를 놓고 정부가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다.미국은 겉으로는 북한에 지원 할 원자로의 노형(爐型)이 「한국형」이라는데 이견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을 내세워 한국측의 양보를 은근히 요구하는 분위 기다.이유인즉「한국형」 원자로에 대한 북한측의 거부감이 너무 거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북한측이 보관하고 있는 핵폐기물을 다시 재처리하겠다고 주장하고 나서서 어렵게 맺은 제네바 합의가 무산되려는 판이니 한국측이 양보했으면 좋겠다는 것 이다.
그런데 그 양보의 요구내용을 보면 지금까지「한국형」이라는 이름만 갖고 설왕설래(說往說來)했다던 정부측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은 아예 미국제 원자로나 러시아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고 미국이 은근히 동조하려는 기색이라는 얘기다.정부측으로 부터 북한측의 제안내용이 흘러 나오는 배경에는 미국정부가북한측의 요구라는 이유로 원자로까지 미국제를 제공하려는 속셈을갖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이런 데까지 끼어들려는 미국 기업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에 대한 분노가 없지 않은 것같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은 그야말로 「돈도 주고 뭣도 주는」꼴이 될 것이다.북한에 지원할 경수로 건설자금 약 45억달러의60~70%,그러니까 약 25억달러라는 돈을 대면서 남의 원자로를 사주는 꼴이니 말이다.미국이 한국을 뒷전에 밀어놓은채 벌이고 있는 협상내용이 이런 것이고 그런 식의 협상이 오가고 있다면 한국이 굳이 북한에 경수로를 지원한답시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 참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되물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미국측의 입장을 아주 가혹하게 비판하는 의견중에는 미국의 진정한 관심은 한국에 있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그들의 첫째 관심은 곧 시효가 끝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연장이다.북한은그런 조치의 가장 분명한 예이므로 어떻게든 북한 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른 국가들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다.
두번째,그리고 미국측의 가장 속깊은 관심은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중동에 미칠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북한은 지난걸프전 때 이스라엘에 날아간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보다 성능이좋은 미사일을 이란과 다른 중동국가에 제공하■ 나 하려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미국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유대계의 신문들이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위협이며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최근 이스라엘 총리가 방한하는등 동북아에까지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연유라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미국기업의 이해가 끼어든 게 아니냐는 것이다.미국의 원자로 제조회사들이 북한과 실제로 어떻게 짝짜꿍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그들은 충분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것이다.최근 한국에 와있는 미국기업들의 모임인 주 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한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신청서 제출에 대해 한국은 자격이 없다고 뒷다리를 잡으면서 미국정부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먼저 북한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청하는 판이니 그들의 행태는 더 말 할 것도 없다.
베트남 패망때 주월(駐越)대사의 체험기를 보면 미국은 월남의붕괴가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른바「명예로운 철수」를 이루기 위해 월남을 윽박질러 평화협정을 체결케 했다고한다.그들은 월남정부의 애걸을 받아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패망 협정」에 서명하도록 압력을 가한 것이다.
***自國이익에만 급급 만약 미국의 의도가 진정 한반도의 안정에 있다면 그들이 지금과 같은 정책을 취했을까 의구심이 간다.애시당초 말도 안되는 경수로 지원문제라는 것을 대북정책 대안이라고 만들어 놓고 「손도 대지 않고 코 풀려는」미국으로서는 한국정부의 대행자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그래야 그것이 북한에 대해서도 먹혀들지 않을까.
그들이 한국을 언제까지「돈 내고 뺨 맞는」봉으로 여길 것인지정말 알 도리가 없다.

<김영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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