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2000>20.복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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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은 웬만한 사무실이라면 거의 빠짐없이 구비하고 있는 것이복사기지만 불과 20,30년전만 하더라도 사정은 전혀 달랐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관공서나 학교.사무실 등에서는 서류 밑에 깔고 쓰는 시커먼 먹지나 잉크를 묻힌 롤러를 손으로 밀어서쓰는 등사기가 복사수단의 전부였다.
작업할 문서량이 많은 곳에서는 필경사(筆耕士)를 따로 두거나등사만을 전담하는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그러나 이 모든 풍경은 사무실의 자동화 혁명을 이끈 복사기의 등장으로 사라져 버렸다.
복사기의 기원은 1837년 프랑스의 다게르가 은판(銀版)위에물체의 모습을 고정시키는 사진술을 발명한 때부터 시작된다.
이후 필름 대신 종이 위에 은염(銀鹽)을 씌워 촬영하는 은염사진이 사무용 서류복사에 이용됐으며 1924년에는 감광지를 이용해 현상복사하는 방식의 청사진 복사기(디아조 복사기)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감광지나 인화지 등 특수용지를 사용하는 것이었고 보통용지를 쓰는 오늘날의 정전식(靜電式)복사기는 30년대말에 이르러서야 발명됐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특허변호사로 근무하던 체스터 칼슨은 특허신청을 위해 필요한 도면과 사양서를 복사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은염사진촬영법이 유일한 복사방법이었던 때라 시간과 돈이 많이 들었고 급할 때는 일일이 타자를 치거나 손으로 써야 했기 때문에 철야근무를 하기 일쑤였다.이를 참기 어려웠던 칼슨은 자기의 비좁은 독신자 아파트를 연구실로 이용해 빠르고 간단한 새로운 유형의 복사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실험에 사용한 유황연기의 썩은 달걀냄새 때문에 이웃들의 항의에 쫓겨 멀리 떨어진 아스토리아의 장모 소유 아파트로 연구실을옮기면서까지 연구에 몰입했던 그는 38년 10월22일 최초의 정전식 복사방식을 발명했다.
그가 처음으로 복사해낸 글자는 실험장소와 날짜를 의미하는 「10-22-38 ASTORIA」.
이렇게 만든 칼슨의 복사기를 개선해 시장성이 있도록 만든 것은 할로이드社였다.당시 가족경영 수준의 소기업이었던 할로이드사는 칼슨의 이색적인 복사장치의 특허를 사용하기로 하고 엄청난 개발비를 부담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연구비는 부족했지만 불에 탄 검댕을 응용해 탄소잉크를 만들어내고 토끼털에서 정전기를 일으키는 등 폐품더미속에서 부품개발의아이디어를 찾아낸 기능공들 덕택에 할로이드사는 50년 드디어 정전식 복사기 「제록스」1호기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 제품은 복사공정이 자동이 아니어서 판매대수는 보잘것없었고 59년 9월에 등장한 자동고속복사기 「제록스914」가판매되면서 진정한 복사기의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복사기의 폭발적 인기로 이름을 아예 제록스사로 바꾼 할로이드사는 당당한 재벌기업으로 부상했고 이를 최초로 개발한 칼슨은 억만장자가 됐다.우리나라에는 무역업을 하던 신도교역(現신도리코)이 60년에 일본 리코사에서 들여온 복사기 를 명동 한복판 미우만백화점(現미도파백화점)에 설치한 것이 최초.
당시 미우만백화점은 복사기를 보러 밀려든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승용차 한대값과 맞먹는 가격 탓에 정작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이후 62년 호적사무를 기계화하기로 결정한서울시의 방침에 힘입은 신도리코는 당시 연간 시 장규모 10여대에 불과한 복사기의 개발에 본격 착수해 64년 12월 국내 최초로 디아조식 복사기(모델명 RICOPY-555)를 만들었다. 그뒤 69년 6월 정전식 복사기인 이에프(EF)복사기가 생산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복사기의 선풍이 일기 시작했고 코리아제록스.롯데캐논.라이카 등의 업체가 속속 참여하면서 최근에는 매년내수용 9만5천대,수출용 5만대 정도의 복사기가 생산되고 있다.현재 전세계 복사기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은 입체컬러복사기.디지털복사기까지 개발한 상태며 미래에는 팩스나 프린터의 기능까지 함께 갖춘 디지털 복사기가 일반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朱宰勳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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