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유럽서 번역출판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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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한국문학에 무관심했던 유럽의 권위있는 출판사들이 잇따라 한국문학 번역작품을 내놓을 예정이어서 한국문학 해외홍보에 결정적인 호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출판사인 갈리마르는 5월중으로 신경림시선집『쓰러진 자의 꿈』을 내놓을 예정이다.갈리마르는 지난해 『홍길동전』을 낸 적이 있지만 현대작품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
소설가 최윤의 남편인 파트릭 모뤼스(45.성균관대교수)가 3년간에 걸쳐 번역한 『쓰러진 자의 꿈』은 장시 『새재』를 비롯해 「파장」「겨울밤」「농무」「시골 큰집」「어둠으로 인하여」등 4권의 시집에서 뽑은 39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
독일의 권위있는 출판사인 주어캄프도 고은씨의 시집 『조국의 별』을 출간키로 했다.주어캄프가 한국문학을 출간하는 것은 83년 1백여편이 실린 김지하시선집을 낸 이후 두번째.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전문번역가 채운정씨의 주선으로 출간되는 『조국의 별』은 채씨와 독일인 한국문학 연구자가 공동으로 번역할 계획이다. 이와함께 80년대 후반부터 『고전시조선집』『한중록』『을화』등을 내놓으며 한국문학에 관심을 보여온 1백30년 전통의 영국출판사 키건 폴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완간된 『토지』를 모두 번역 출간키로 했다.『토지』를 낸 솔출판사의 임우기 사장은 『키건 폴 출판사의 피터 홉킨스회장이 2월에 직접 방한해 박경리씨와 번역문제를 상의하고 갔다』면서 『홉킨스회장으로부터 한국문학번역에 매우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현재 『토지』영어판은 1부의 번역이 완료돼 4월중으로 출간될예정이다.키건 폴 출판사의 책은 80%가 영국.미국.인도등 영어권 국가에서 동시 출판되는데 『토지』영어판도 이들 국가에 소개된다. 프랑스에서는 『토지』 1부가 이미 지난해 9월 벨 퐁출판사에서 번역돼 나와 파리지역에서만 2천5백여권이 팔려나가고프랑스 『렉스프렉스』지가 서평을 게재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은바 있다.이밖에 갈리마르출판사와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 세유출판사도 한국문학 번역작품 출간계획을 세워놓고 한국측과 교섭중인 것으로 알려져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음을 실감케 해주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대조적으로 미국에서의 번역출판은 일반 출판사의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고 대학출판부를 통해 한국문학 전공자들의교재를 공급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해외에 소개된 한국문학 번역물은 모두 1백50여종으로 추산된다.이중 문예진흥원의 지원금으로 출간된 책은 92종이고 나머지는 저자와 번역자가 개인적으로 내놓은 것들이다.
현재 해외번역사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곳은 문예진흥원과 대산재단 두곳 뿐.1년 예산은 합해도 5억원이 안되는 실정이다.일본이 올해 노벨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해외 전집출판에 1백억원을 투자한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에 관심을 기울여온 권영민 서울대교수는 『세계적인 출판사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한국문학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지금의 호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책지원은 물론이고 기업의 자금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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