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과거는 태우고, 미래는 방치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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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남대문이 잿더미로 변한 날 국회에선 다른 우울하고 갑갑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하려 하자 민주노동당 의원 8명이 물리적으로 막은 것이다. 민노당은 소위 자주파(NL)와 평등파(PD)가 싸워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비준안 저지에는 자주도 평등도 없었다. 오직 반대만이 있었다.

한·미 FTA는 지난해 6월 말 체결됐다. 1년여의 산고(産苦) 끝에 힘들게 태어난 미래 한국 경제의 희망이다. 그런데 7개월 넘게 국회 비준이 안 되고 있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보면 한·미 FTA는 더 긴요하다.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가고 있고,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해 수출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한국으로선 한·미 FTA로 활로를 뚫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 국회가 먼저 FTA를 비준해 미국 측을 압박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다. 갈 길은 급하고 먼데 소수의 근시안 세력이 누워서 길을 막는 것이다.

민노당과 깊이 연계되어 있는 민주노총은 지도부를 미국에 파견해 FTA 비준 저지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미국 의회에는 비준 거부를 촉구하고 노동계와는 공동투쟁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급진 진보세력의 정당은 서울에서, 노조는 미국에서 한·미 FTA에 불을 지르고 있다.

남대문이 무너졌다. 한국은 과거는 태워버리고, 미래는 방치하고 있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를 맞아 새로운 기운으로 도약을 모색해 보자는 마당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대다수 국민의 마음은 답답할 것이다. 국회는 경호권을 발동해서라도 위원회의 질서를 회복하고 비준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명분이 있는 일이라면 4월 국회보다는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이 떳떳하다. 민노당의 무분별한 벼랑 끝 투쟁은 총선에서 유권자의 냉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세상을 크게 봐야 한다. FTA로 수출이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야 노동자들의 복지가 향상된다. FTA는 노동자의 밥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