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67) 경기 안산 단원 민주당 민영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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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민영삼 부대변인(43)이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천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안산 단원에서 출마를 선언한 것. 천 의원은 그와는 동향이자 목포고 5년 선배다.

“고향도 아닌 외지에서 동문들끼리 맞붙을 건 뭐냐며 다른 동문들이 말리기도 했지만, 민주당 분당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천 의원은 정말 잘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사석에서는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 천 의원과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분당으로 민주 세력을 분열시키고 신지역주의를 조장한 책임을 열린우리당에 반드시 묻고, ‘은혜를 배신으로 갚은’ 천 의원을 꼭 단죄하겠다”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 민 부대변인은 수감 중인 정대철 열린우리당 의원(전 민주당 대표)을 면회하러 갔다가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모르니 신당(열린우리당)에 가시지 말라고 말렸다”면서 그 때 정 전 대표의 열린우리당행을 막지 못한 게 너무도 후회 된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지난 1984년부터 20년 가까이 정 의원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한 최측근이다. 노무현 대통령 식으로 표현하면 정 의원과 ‘동업자’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결혼 주례도 정 전 대표가 맡았다. 긴 세월 두 사람은 ‘바늘’과 ‘실’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에 남아 배지를 달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함께 가자”는 정 의원의 권유를 그는 일언지하에 뿌리쳤다. 그는 “차마 민주당을 떠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강산이 두 번은 변했을 20개 성상을 보좌했는데, 왜 따라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50년 정통 야당의 길을 걸은 민주당을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신당 창당의 명분에 동의할 수도 없었구요. 결국 큰 의리를 위해 작은 의리를 접기로 마음을 굳혔죠.”

그는 이번 총선에서 “쓰러져가는 민주당의 깃발을 다시 세우고, ‘지조’와 ‘절개’를 지킨 사람이 반드시 승리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보여 주겠다”고 강변했다.

▶ 민영삼 부대변인이 쏟아내는 말들은 대부분 언론의 ‘말말말’ 에 오를 만큼 그의 논평은 유머와 재치가 돋보인다. “김민석이 인당수에 팔려가니 공양미가 들어온다”(김민석 전 의원이 국민통합21로 당을 옮기자, 민주당으로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온 것을 빗댄 것), ‘클린정당 경제정당 민주당’, ‘탈레반 3인방’(민주당 분당 당시 총대를 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의원 등 신당파 핵심 3인) 등이 그 예들. 그는 정쟁(政爭)보다는 ‘샴 쌍둥이 분리수술 성공 기원’, ‘노동계 파업에 대한 입장’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논평을 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처음이었던 ‘여중생 미군 장갑차 희생 사건’ 논평도 그의 작품이다.

민 부대변인은 한때 노무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이던 시절 유종필 대변인, 김현미 부대변인이 기용되기 전이었다. 6·13 지방선거와 8·8 보궐선거의 패배로 민주당 지지도가 곤두박질치고 노 후보의 재신임 문제가 불거졌을 때였다. 말하자면 노 후보가 가장 곤혼스럽고 어려웠던 시기에 그를 지키고 대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그러나 노 대통령에 대해 분명히 선을 그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당을 배신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역주의의 피해자인 호남 사람들을 오히려 지역주의의 원인 제공자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국정을 망쳐 놓고 지금도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총선에만 올인하고 있어요.”

민 부대변인은 고려대 사회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기 전 A.C.닐슨 선임연구위원, 대륙연구소 사회여론조사부 책임연구원, 유포래드 사회여론조사국장 등으로 ‘여론조사업계’에서 일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민주당이 치른 각종 선거 때 정확히 결과를 예측해 주위 동료들로부터 ‘쪽집게 도사’란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는 한양대 안산 캠퍼스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안산을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 경기도 오산·화성에서 나오는 임창렬 전 경기도지사도 그에게 안산을 적극 추천했다는 후문이다. 임 전 지사와는 1998년 6·4 지방선거 때 임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임 전 지사가 당선된 후 그는 경기도(청) 서울사무소장을 맡아 국무회의에서 추진하는 각 지방자치단체 입법 업무 조정, 경기도 외자 유치 등의 일을 처리했다. 그는 그런 만큼 경기도 돌아가는 건 “천리 밖에서도 훤히 꿰뚫고 있다”고 장담했다.

그 시절 실물경제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 나름대로 행정 경험도 쌓았다는 민 부대변인은 경기도의 최대 현안으로 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특히 지역구인 안산에 대해선 “신흥 공업도시로 발돋움하는 곳으로 발전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경기 침체로 중국으로 떠나는 우리 공장들을 다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반월·시화공단 활성화는 바로 그 전제이자 지역경제를 살리는 열쇠입니다. 공단이 활성화되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인구도 그만큼 늘어나게 되죠. 이들이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아파트 분양가의 거품을 빼야 합니다. 오래된 근로자 아파트의 재건축도 시급히 이뤄져야 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특목고’와 ‘명문고’도 유치해야죠. 안산을 경기도 경제의 중심지로, 돌아오는 안산, 살기 좋은 안산으로 만들 자신 있습니다.”

주 진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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