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 유일하게 살아남은 현판 … 화기 누르려 ‘숭례’라 이름했는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숭례문 현판은 다른 현판과 달리 유독 세로로 달려 있다. 여기에는 관악산의 화기(火氣)가 경복궁에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한 태조 이성계의 고민이 숨어 있다. 백악을 주산으로 경복궁을 남향으로 안치하려던 이성계는 톱날을 거꾸로 세운, 불 모양의 관악산이 뿜어내는 화기를 막기 위해 정남쪽에 큰 문(숭례문)을 만들어 화기와 정면으로 대응하도록 했다. 현판을 종서(縱書)로 쓰고 세로로 세웠다. 이름도 화기를 누르라는 뜻으로 숭례(崇禮)문이라고 했다. ‘례’자는 오행으로 볼 때 불(火)에 해당되는데 여기 ‘높인다’는 의미를 지닌 ‘숭’자와 함께 세로로 써 마치 타오르는 불꽃 형상이 되도록 했다. 불은 불로써 다스린다는 이치다.

또 궁궐 축조 시 숭례문과 서울역 사이 연지라는 연못을 파고, 광화문 앞에는 물을 상징하는 해태상을 세운 것도 화기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현판에 쓰인 글씨는 태종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의 필체다. 천하 명필 추사도 한양으로 내왕하는 길이면 숭례문의 현판을 바라보며 날 저무는 줄 모르고 감탄했다고 한다.

숭례문의 현판은 10일 밤 화재진압 과정에서 소방당국에 의해 떼내어졌다.

이에스더 기자

[J-HOT]

▶숭례문 화재 싸고 풍수·괴담 난무

▶ [동영상] '국보 1호'도 못 지킨 대한민국

▶소방본부·문화재청 "진화 실패 아니다"

▶'우르르' 무너져 내린 숭례문, 복원 가능할까

▶목격자 "용의자 얘기해줘도 경찰 쫓아가지 않아"

▶ "지붕 뜯고 물 뿌려야 했는데…" 진화 타이밍 놓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