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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Study] 28만원짜리 12만원에…교복 ‘공구’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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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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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년을 맞으면서 교복값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주 교복값 불만을 접수하는 신고처를 개설했다. 업체들이 담합하거나 학부모들의 교복 공동구매를 방해하는 것이 주요 신고 대상이다. 일단 올해 상황은 조금 개선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엘리트베이직·아이비클럽·스쿨룩스 등 4대 메이저 업체들이 가격을 10~20%쯤 내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녀 교복이 부모님 양복보다 비싸다’는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결과다. 하지만 마케팅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힘을 합치면 값을 더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1000개 업체에 가격은 두 가지뿐?=전국엔 교복업체가 1000여 곳 있다. 4800여 개 중·고교의 교복을 만드는 회사들이다. 그중 4대 메이저가 전체 시장의 84%를 점유한다. 중소업체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얼마나 영세한지 짐작할 수 있다.

올해 4대 메이저 교복값은 한 벌(재킷·하의·셔츠·조끼)에 20만원 정도 한다. 지난해엔 24만원 안팎이었다. 중소업체들의 비(非)브랜드 제품은 지난해와 비슷한 16만원 선이다. 둘의 가격 차가 지난해 8만원에서 올해는 4만원으로 줄어든 것이다. 브랜드 교복들이 값을 인하하면서 이들에게로 쏠림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가격 차가 줄어들자 소비자들이 브랜드 교복을 더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남과 비교되는 걸 의식하는 데다 광고에 큰 영향을 받는 학생들은 특히 브랜드 제품을 선호한다. 비브랜드 교복을 사려던 부모 입장에서는 지난해보다 지출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

 공급자가 1000곳을 넘는데도 가격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 것에 대해 마케팅 전문가들은 시장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메이저는 메이저끼리, 군소업체 역시 그들끼리 이심전심으로 비슷한 가격대를 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조가 의외로 느슨하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학교나 학부모 차원에서 공동 구매로 대응하면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으로 대량 구매하면 당연히 가격 협상에서 유리해진다. 이런 식으로 시중 가격보다 절반 이상 깎은 학교가 있다. 서울 S중학교는 학부모들이 나선 덕분에 28만원짜리를 12만원으로 낮췄다. 경남 창원시 K고 학생들은 22만원짜리를 10만원에 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동구매를 하는 학교는 교복을 입는 학교의 45%에 불과하다. 공동구매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2월 초 학교 배정 발표 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학부모들이 운영위원회를 꾸려 공동구매에 나서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촉박한 탓이다. 자녀가 입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모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학년 초엔 동복 대신 사복을 입고 다니다 학부모들이 운영위원회를 구성한 뒤 하복부터 공동구매를 하자는 제안이 교육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올해부터는 학교장 재량으로 학년 초엔 사복을 입을 수 있게 됐다. 이럴 경우 동복 구매 수요가 줄어들어 가격 하락 요인이 생기는 데다 학부모들의 공동구매 활성화로 하복 가격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년도 이월상품을 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학생들에게 ‘합리적 소비’ 가르쳐야=공동구매를 통해 가격을 10만원 이상 내린 케이스는 그만큼 교복값에 거품이 있다는 증거라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중소 교복업체 모임인 한국교복협회는 지난해 교복값 불신을 씻기 위해 제조원가를 공개했다. 협회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원단과 부자재를 사용했을 경우 한 벌 제작원가는 10만원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부가세와 마진을 붙인 적정 소비자가격은 16만8000원이라고 제시했다. 협회의 송영주 이사는 “대형 업체는 원단의 대량 구매가 가능해 중소업체보다 원가를 더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대형 업체들이 광고비를 많이 쓴다는 점이다. 서울 신길동에서 교복업체를 운영하는 정광민 사장은 “인기 스타를 내세운 대형 교복업체들의 TV 광고와 팬 사인회, 판촉물 공세가 지나치다. 본사-총판-대리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유통 과정도 값을 올리는 데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형 업체들은 디자인과 원단 개발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가격이 높다는 입장이다. 엘리트베이직 박지영 팀장은 “정욱준·노승은 등 유명 디자이너가 감수하고, 학생들의 왕성한 활동량을 견딜 수 있는 특수 원단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지영 아이비클럽 팀장은 “디자인, 브랜드 파워, 애프터서비스, 백화점·할인점 등 편리한 구매처 등 비싼 만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비싼 제품을 구매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복은 일반 제품과는 달리 특수성이 있다. 친구들의 눈을 무척 의식하는 때라 ‘소신 구매’가 어렵다는 점이다. 메리제인 리디코트 주한 호주대사관 교육참사관은 “브랜드에 좌우될 게 아니라 값에 비해 질 좋은 제품을 선택하는 합리적 소비를 학생들에게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교복=1983년 폐지됐다가 90년대 초 자율화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현재 전국 중·고교의 94%가 교복을 입는다. 교복에 관한 모든 결정은 학교 측에 맡겨져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정한 색깔과 디자인만 준수하면 된다. 따라서 어느 업체 제품을 구입하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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