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그 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매스컴은 요란하게 떠들어 댔고그는 그의 말대로 무죄로 풀려났다.이 사건은 오히려 그만 유명한 정신과 의사로 만들어 주었다.주미리의 몸속에서 나온 정액은그의 것이 맞았지만 그는 그녀를 강간하지 않았 다고 주장했다.
둘이는 서로 사랑했다는 것이다.특히 그녀의 몸에 새겨진 글자는그녀 또한 원한 것으로 밝혀졌다.글자체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선명하게 굳은 것이,그녀가 반항하거나 그녀를 죽인 다음에 새긴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 법의학 자들의 주장이었다.강태구는 속이 터졌지만 전문가가 그렇다는 데는 할 수 없었다.아무튼 의료 계통의 분쟁만 일어났다 하면 팔이 안으로 굽는 데는 열불이터진다.아,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렇지,죽은 사람을 깨물었으니 글자체가 안변했지 산 사람을 깨물었는데 글자체가 안변해? 그러나 어찌하랴! 전문가가 그렇다는데….
특히 그가 무죄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는 그녀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민우는 일본에 있었다는 것이다.주미리는김민우가 일본으로 떠난 직후에 죽 은 것이었다.물론 그 차이는하루가 채 안되었지만 법의학자가 사망시간을 정확히 추정해냈다고주장하는 데는 할말이 없었다.또 판사들은 일본 사람들이 슬리퍼를 끌고 어떻게 한국을 드나드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이에 강태구는 사망시간 추정 을 위한 재부검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이미 그녀의 시체는 가족들에게 넘어간 뒤였다.그리고 가족들은 이상하게 김민우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주미리가 언젠가는 김민우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그들은 희망했다고 밝혔다.강태구의 재부 검에 대한 주장은 그녀의 하얀 재 앞에서 무기력하게 꺾일 수밖에 없었다.수사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강태구의 실수였다.피부에서 글자가 드러나고 위에서 독극물이,자궁에서 정액이 검출된 것만으로 서둘러 부검을 종결한 것이 실수였다.아름다운 시체를 그나마 더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이유였을 것이다.방심하지 않고 좀 더 샅샅이 조사했더라면 좀더 많은 증거를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강태구는 민우를 포기할 수 없었다.강태구의 예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분명히 범인은 김민우다.주미리의 수첩이 그것을 증명한다.주미리의 수첩에는 알 수 없는 기호와 사인들이많이 있지만 이것이 밝혀질 경우 김민우의 범행 사실은 다시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강태구는 지금 그 수첩을 전문가들에게 의뢰하고 있는 중이었다.그 글자들은 분명히 죽기 전에 쓴 것이다.그러나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젓는 게 아무래도 감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한다.
알 수 없는 상징 부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강태구는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할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그리고 증거가 잡히는 날 그 샌님 같이 생긴 마마보이를 보기 좋게 체포하리라.그래서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를 하 나 제거하리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