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뷔통 세대’ 가 엄마 되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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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6개월짜리 딸을 둔 주부 김은주(29)씨는 루이뷔통 세대다. 브랜드 가치와 디자인을 좇아 2000년대 초 명품시장의 대중화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이다. 그는 아기 용품 대부분을 수입품으로 구입한다. 유모차·카시트·식탁의자·아기띠…. 국산보다 1.5~3배 비싸지만 그는 “아기는 하나뿐이니 가격에 신경 쓰지 않는다. 품질이 최고면 된다”고 말했다.

유아용품 시장을 수입품이 점령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서울 압구정 본점의 유모차 매출의 80%, 카시트 매출의 60%는 ‘매클래런’ ‘콤비’ 같은 수입 브랜드가 차지한다. 인터넷쇼핑몰 옥션은 최근 일본 기저귀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군’ ‘메리즈’란 이름의 일본 기저귀가 지난해에만 16만3000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다.

◇명품세대가 열풍 주도=수입 유아용품 최대 구매고객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수입품 열풍을 루이뷔통 세대가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백화점 유아용품 담당 권순만 대리는 “남들에게 브랜드 로고가 노출되는 유모차의 경우 엄마들에겐 핸드백이나 옷 못지않은 액세서리처럼 취급된다”고 전했다. 영국 유모차 브랜드 매클래런은 이런 엄마의 심리를 고려해 ‘버버리’ ‘케이스 스페이드’같이 젊은 여성이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와 손잡고 신제품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유아용품 수입업체 세피앙의 전태주 팀장은 “명품 시장처럼 가격이나 실용성보다 브랜드와 역사, 디테일과 소재를 따지는 소비 행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 브랜드만 찾는다=김은주씨가 가장 꼼꼼히 따지는 점은 전문 브랜드에서 만드는 제품인가 하는 것이다. 유모차는 매클래런(영국)·스토케(노르웨이), 카시트는 브라이텍스(호주)·콤비(일본), 이런 식이다. 이 브랜드들은 저마다 특허 기술이나 신소재를 내세우며 기능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면 매클래런은 뒷바퀴가 발에 차이는 일이 없도록 바퀴가 앞쪽으로 쏠리게 디자인했다. 스토케는 타이어 충격 흡수율이 높아 비포장 도로나 낮은 계단을 오가기에 좋다는 평을 받는다.

두 살짜리 아이를 둔 이현주(32)씨는 “아기띠만 봐도 국산은 앞으로 메거나 뒤로 업거나 두 가지 기능밖에 없지만, 일본 제품은 일곱 가지로 자세를 바꿔 안을 수 있다” 고 말했다.

◇토종업체 실정은=국내에선 경쟁력 있는 브랜드도, 품질을 내세울 만한 제조업체도 마땅치 않다.

국내 유아용품 시장은 대형 유아복 회사 아가방앤컴퍼니·이에프이가 주도하지만, 개별 유아용품은 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들여와 경쟁력을 강조하기 힘든 실정이다.

국내 두 회사는 아예 직수입 유아용품의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아가방앤컴퍼니는 지난해 유모차 브랜드 무치·베르티니를 직수입했다. 이에프이도 지난해부터 콤비(일본)·레카로(독일) 브랜드의 카시트와 실버크로스(영국) 유모차를 팔고 있다. 영국산 젖병과 증기 소독기도 들여왔다.

컨설팅업체 액센츄어의 박종성 전무는 “명품 브랜드에 저가나 또 다른 수입품으로 맞서는 식의 경쟁은 오래갈 수 없다”며 “품질 높은 전문 브랜드를 육성하기 위해 장기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루이뷔통 세대=2000년대 초반 명품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 브랜드의 가치와 상징성을 중시한다. 용돈이나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자신의 경제력에 비해 다소 비싼 핸드백이나 구두를 구매한다. 이들이 선호하는 브랜드가 루이뷔통·샤넬·페라가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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