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 베이징 향해 승부수 던져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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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호 16면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을 2-1로 제압한 한국야구의 환호. 태극기를 든 주장 이종범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한국야구는 베이징에서 이 기쁨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중앙포토]

올림픽, 그 마지막 축제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는 야구를 볼 수 없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최고 기량을 가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서지 않는다면 야구를 정식종목에서 제외한다”고 공언해 왔고, 결국 지난 2005년 총회에서 이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 때문에 메이저리그는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출범,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은 야구가 세계와 함께하는 마지막 축제다.

대표팀 사령탑인 김경문 두산 베어스 감독은 “축구가 A매치에서 국민적 인기를 얻었듯이, 야구도 마지막 올림픽을 부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대표팀의 올림픽 본선 진출을 자신하며 8월 일정 중 대회 준비 기간을 포함해 3주를 비워뒀다.

2000년대 들어 야구도 국제대회 성적과 국내 리그 열기의 상관관계가 커졌다.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과 구대성(한화 이글스)의 활약으로 동메달을 따냈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만·일본에 연패하며 예선 탈락했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한국 야구의 인기와 국제적 위상을 결정했다.

어쩌면 야구는 올림픽과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북미와 아시아 대륙 10여 개 나라에서만 활성화된 종목인 데다, 가장 몸값이 비싼 선수들 24명이 팀 하나를 만드는 것도 다른 종목들과 맥이 다르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야구의 A매치는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WBC에서만 볼 수 있다.

WBC는 야구만의 무대다. 월드컵처럼 전 세계를 들끓게 할 수 없다. 야구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에서 한국야구는 어떻게 기억될까.
 
박찬호, 그리고 이승엽

“마지막 대표팀 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아 예선에 참가했던 박찬호(LA 다저스)가 했던 말이다. 다저스가 “올림픽 예선에서 던지면 가계약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자 박찬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데 훈련 중 팀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대만전에서 좋은 피칭을 했다. 그렇지만 메이저리그 캠프가 진행되는 3월에는 대표팀에 올 수 없다.

이 말을 이승엽도 되풀이했다. 왼손 엄지 수술을 받느라 아시아 예선에는 뛰지 못했지만 3월 대회 참가를 약속하면서다. 일본 센트럴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은 본선 참가를 확약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 때문에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은 상태지만 3월에는 국가를 위해 꼭 뛰겠다고 선언했다.

마지막 올림픽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감독은 “이승엽이 뭐가 아쉬워서 대표팀에 오겠나. 수술 부위가 완전치 않은 데다, 팀 내 경쟁도 치열한 상황에서 국가를 위해 뛰겠다고 하니 더없이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이 빠진 아시아 예선에서 김동주(두산)·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등 중심타자의 거듭되는 헛스윙 때문에 속을 끓였던 터다.

이승엽의 합류로 대표팀은 아시아 예선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전력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대표팀 단골 선수였던 이병규(주니치 드래건스)·박재홍(SK 와이번스) 등을 빼는 대신 의욕 넘치는 20대 선수들로 마운드와 타선을 꾸렸다. 또 국내로 복귀하면서 대표팀 소집이 수월해진 서재응(KIA 타이거즈)과 김선우(두산)도 예비 엔트리에 포함했다.

이변은? 아니면 기적은?

대륙별 플레이오프에서 경계 대상으로 대만·호주·멕시코·캐나다 등이 꼽힌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대만·호주가 본선 티켓 3장을 따낼 확률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야구는, 특히 단기전은 능력보다는 정신력이 승패를 가른다. 기록보다는 심장이 더 중요하다. 이런 변수는 대표팀이 베이징으로 가는 길목에서 넘어질 수도 있고, 메달을 따낼 수도 있게 만든다. 2006년 WBC에서 한국이 일본을 두 차례나 꺾고, 멕시코·미국을 연파했다가 준결승전에서 일본에 패한 기억이 좋은 사례다.

이승엽이 합류를 약속하면서 대표팀의 사기는 높아졌다. 한편으로는 불안 요소도 커지고 있다.

대표팀 수석코치로서 마운드 운용을 책임졌던 선동열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소속 팀에 전념하고 싶다”며 사의를 표했다. WBC에서 신기에 가까운 투수교체로 상대를 혼란스럽게 했던 선 감독의 공백은 쉽게 메워질 것 같지 않다. 또 일부 감독들은 소속팀 선수를 대표팀에서 빼낼 이유를 찾고 있다. 시즌 전 대표팀 차출은 아무래도 정규시즌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그렇다.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할 서재응은 대표팀의 부름에 아직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김선우는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몸이 덜 만들어져 있다.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김 감독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 불참을 통보해온 선수는 없다. 각자 스프링 캠프에서 컨디션을 끌어올려 합숙훈련 소집(2월 20일 예정)에 응할 것으로 믿는다. 한번 기세를 타면 가장 무서운 팀이 한국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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