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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도시의 자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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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숲속의 맹수가 두려워 초원에 불을 피우고 사는 인간들 주변에 황금자칼이 몰려든다. 가끔 인간이 던져주거나 먹다 남은 고기 맛을 봤기 때문이다. 자칼은 맹수가 나타나면 소리를 내 위험을 알려주곤 한다. 어느 날 자칼이 야생마 사냥꾼을 따라나선다. 창을 맞고 도망치던 야생마를 놓쳐 사냥꾼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자칼이 냄새를 맡고 말을 추적한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비교행동학의 창시자인 콘라트 로렌츠가 쓴 단행본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의 도입 부분을 간추린 내용이다. 개의 조상과 인간이 서로 '공생'관계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상상한 것이다. 그의 추측대로라면 선사시대 들판을 누비던 인간에게 개의 조상은 귀중한 동반자였다.

개는 늑대보다 자칼에 가깝다. 에스키모 개, 중국의 차우차우 등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야생 자칼의 혈통이 우세하다. 인간이 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말기인 1만여년 전으로 추정된다. 발트해 주변의 선사 주거지에서 황금자칼의 혈통으로 보이는 작은 개의 유골이 다수 발견됐다.

개의 기원은 망 보는 개, '번견'(番犬)에서 시작됐다. 고대 이집트에서 부녀자들이 사는 방 주변에 번견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로마시대 때 투견이나 군견이 등장했다. 중국 당나라 문헌에는 제주에서 개를 길러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그럼 개가 사람에게 복종하는 본성은 어디서 나온 걸까. 새끼가 부모를 전적으로 따르는 자칼의 습성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암컷이나 새끼를 좀처럼 괴롭히지 않는 수캐의 '기사도'정신 역시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개를 기르려면 이웃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물린다.' 서울시가 최근 마련한 공동주택관리규정 개정안에 이런 내용이 담기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공중예절"이라는 찬성과, "기르던 놈을 버려야 하느냐"는 반대가 팽팽하다. 서울에서 버려지는 개가 한달에 수백마리에 이른다는 추정치도 나왔다. 도시화가 두 생명체의 원만한 공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칼의 신(神)이 있다면 '시견(市犬)'들에게 이렇게 말해줬을 법하다. "인간들이란 동족에게도 싸가지없게 구는 존재들 아닌가. 그러니 애초 누가 바보처럼 인간을 따라가라고 그랬어."

이규연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