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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25곳 예비인가 ‘사법 백년대계’ 시작부터 만신창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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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일 서울 정부 중앙청사 후문 앞에서 청주대(총장 김윤배) 교직원들이 로스쿨 예비인가 무효화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4일 오후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아주대는 법학전문대학원 유치를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을 학교 건물에 내걸었다. [수원=연합뉴스]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이 혼선과 진통 끝에 예정(1월 31일)보다 닷새 지연된 4일 최종 확정 발표됐다. 탈락한 대학들이나 정원을 적게 배정받은 대학들의 반발은 더 거세졌다. 단국대가 이날 처음으로 ‘로스쿨 예비인가 취소’ 소송을 낸 것을 비롯해 대학들의 줄소송도 이어질 전망이다.

청와대의 ‘1광역시·도 1로스쿨’ 원칙에 실낱 같은 희망을 가졌다가 탈락이 확정된 경상대의 김종회 법대학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김신일 부총리가 9월 본인가 때까지 추가 선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 정부의 책임을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발했다. 근대 사법 100년사에 가장 큰 개혁이라는 로스쿨 도입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채 상처투성이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줄소송 불가피”=단국대는 이날 서울행정법원에 로스쿨 예비인가 거부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학교 측은 “동문 출신 변호사 100명이 대리인으로 나서는 대규모 소송”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김석현 법대학장은 “최종 발표 내용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며 “9월에 재조정한다는 것은 책임을 새 정부로 떠넘기려는 것이어서 예비인가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단국대는 교육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예비인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도 함께 냈다. 조선대·선문대·동국대·국민대 등 16개 탈락 대학 대부분도 소송 준비에 돌입했다. 로스쿨이 출범도 하기 전에 법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정치논리 개입한 탓”=동국대 정용상(법학과) 교수는 “교육부가 지난해부터 수도권과 지방 대학을 가르고, 국립대와 사립대를 대립시키며 대학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23일엔 국립대와 사립대의 총장협의회는 ‘로스쿨 총정원 3200명 이상’을 주장하며 공동 대응을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저녁 국립대 총장들은 별도로 청와대에 모여 ‘지역 균형발전’을 고려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균형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로스쿨 총정원을 둘러싼 국립대와 사립대의 ‘동맹’이 깨진 것이다.

3일 법학교수회 긴급회의에선 A교수가 “정부가 총정원을 2000명으로 했을 때부터 공동 투쟁을 했으면 지금 이런 꼴을 당했겠는가”라고 성토했다. “선정된 대학 교수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역 균형을 고려했다지만 같은 권역 내에서 선정된 대학과 탈락한 대학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쿨 비대위 이창수 공동상임집행위원장은 “총정원을 묶고 지역안배로 나눠 먹겠다는 ‘로스쿨 정원 할당’ 방식 자체가 정치 논리에 따른 것”이라며 “로스쿨은 100%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선정된 대학도 불만=예비인가에서 50명을 배정받은 중앙대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중앙대 장재옥 법대학장은 “개별 입학정원이 적은 곳을 보완해 로스쿨을 제대로 만들려는 의지가 교육부에는 없는 듯하다”며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모든 평가자료를 확보하고 인원 배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도 내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호문혁 법대학장은 “서울대 150명 정원을 조금이라도 손댄다면 로스쿨을 보이콧하겠다”고 말했다.

법학계 원로인 명지대 허영(헌법학) 석좌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지역균형 논리로 로스쿨을 접근했기 때문에 후유증이 심각한 것”이라며 “정원 40~50명으로는 로스쿨 운영 자체가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새 정부가 총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배노필·백일현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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