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항명'으로 열고 '항명'으로 닫는 노무현 정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2003년 3월 평검사들이 … 2003년 3월 검찰 인사 등을 둘러싸고 평검사들이 집단 반발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중앙포토]

현직 대통령에 대한 항명(抗命)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강력한 대통령제에서 항명은 비장한 각오 없이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기존 공무원 조직과의 잦은 마찰 속에 끊임없이 항명이 이어져 왔다.

2003년 3월 현 정부 출범 직후 검찰의 집단반발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 인사에 강력히 반발하고 평검사들이 성명서까지 발표했다. 검사들의 집단 항명 조짐에 노무현 대통령은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평검사와의 대화’였다. 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며 검사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2004년 9월에는 ‘외교부·국방부 등 용산기지 협상팀이 대통령을 배제한 채 굴욕적으로 협상했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직무감찰 보고서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2006년 2월에는 하위직 경찰공무원 30여 명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 하위직 경찰공무원들도 간부급인 경위까지 근속승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에 대해 노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입장을 밝히자 집단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경찰공무원들은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같은 해 6월에는 김근태 당시 복지부 장관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 보자”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맞받았다. 하위직 공무원부터 여당의 실세까지 전방위적인 항명이 전개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은 영토선이 아니다”는 노 대통령 발언이 논란을 빚자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 나선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NLL에 대해 별다른 합의 없이 평양에서 귀환했다. 관가에서는 “군도 항명 대열에 가세한 것 아니냐”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정치사에 ‘항명’이란 두 글자가 널리 회자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다. 1969년 4월 권오병 문교부 장관 해임결의안에 대해 공화당 의원 40여 명이 당명을 어기고 찬성표를 던진 ‘4·8 항명파동’이 대표적이다. 화가 치민 박 전 대통령은 항명을 주도한 예춘호·양순직 의원 등 5명을 제명 조치했다. 71년 10월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결의안을 전격 통과시킨 김성곤·길재호 의원은 이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출당되는 아픔을 겪었다.

박신홍 기자



김신일의 ‘고집’ 왜

관료들 “원칙 깨면 교육부 존립 흔들려” 설득
교육학자로 ‘평생 남을 오명’ 의식했을 수도

2008년 2월 부총리가 …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4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로스쿨 설치 예비 인가 대학 명단을 발표한 후 퇴장하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청와대에 항명을 한 김신일 교육부총리의 ‘고집’이 화제다. 김 부총리는 청와대 측이 지난달 30일 “경상남도에 로스쿨 한 곳을 추가 선정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4일까지 로스쿨 선정 과정에서 청와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텼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교육부의 협상은 지난 닷새간 제자리 걸음을 했다.

김 부총리는 4일 실·국장회의에서도 “위원회의 잠정안대로 가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로스쿨을 추가하면 선정 대학이나 탈락 대학 모두 반발해 ‘판’ 자체가 깨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교육부 관리들도 “원칙을 깨면 새 정부에서 교육부는 존립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득했다. 정권은 가지만 관료는 남는다는 논리였다.

김 부총리는 2006년 9월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의 코드를 맞췄다는 비난을 샀다. “평준화가 고교 획일화를 조장하고, 수월성과 평등성 모두를 죽였다”는 내용의 원고를 발표하려다 부총리가 되자 원고 발표를 취소했다. 특히 수능 등급제를 핵심으로 한 2008학년도 대입과 평준화 정책은 청와대와 철저히 뜻을 같이했다. 전국 대학을 돌며 ‘학생부 50% 반영’을 강요했고, 특목고를 사교육 주범으로 몰아붙이며 설립을 제한했다.

김 부총리의 한 측근은 “(부총리가)로스쿨만은 달랐다”고 말했다. 각 대학이 수백억원을 쏟아붓고 준비한 로스쿨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평생 교육학자로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의식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김 부총리는 4일에도 여러 차례 청와대 문재인 비서실장과 통화했다. ‘경남도 지역 로스쿨’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청와대는 김 부총리가 임명권자를 위해 소신을 접을 것으로 쉽게 생각했다”고 교육부 관리들은 전했다. 교육부 고위 관계자는 “교수들이 삭발하고 불교계가 반발하는데 어떻게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겠느냐”며 “청와대는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고 말했다.

글=강홍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 사진 혹은 이름을 클릭하시면 상세 프로필을 보실 수 있습니다.[상세정보 유료]
※ 인물의 등장순서는 조인스닷컴 인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순서와 동일합니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대한민국 대통령(제16대)

1946년

[現]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부총리 겸임(제8대))

1941년

[J-HOT]

▶ 교육부 뜻대로… 5년간 코드 맞추다 5일간 항명

▶ '사법 백년대계' 시작부터 만신창이

▶ 착잡한 청와대 "지역 균형 부족해 아쉽다"

▶ '로스쿨 추가' 언급은 립서비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