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33.英 웨스트민스터區 일링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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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공직자는 평생이 보장된다.
적어도 영국에서는 이같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공무원들도 살기 위해 민간기업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생존경쟁에 패배한 대가는 냉엄하다.공무원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믿기 어렵지만 지방자치의 선구자라는 영국에선「실제상황」이다.
으스스 하기까지 한 이같은 「행정혁명」은 영국 수도 런던 32개 모든 구청에서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민이 18만2천명인 런던 웨스트민스터區는 행정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선두주자.
웨스트민스터구는 대부분의 대민(對民)서비스업무를 입찰경쟁을 통해 민간에 「매각」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채택했다.
그 주된 이유는 경쟁력과 비용절감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구는 88년9월1일 區가 관리해온 레저센터의 5년간 운영권을 79만5천파운드(1파운드=1천2백50원.9억9천4백만원)에 시빅 센터 레저회사에 넘겼다.영국에서 최초의 일이었다. 이로 인해 웨스트민스터구는 이 센터를 직영할 때에 비해 5년간 43만파운드(4억3천만원)를 절약할 수 있었다.
곧이어 쓰레기수거.도로청소.도로및 공원관리등도 민간에 넘겼다. 현재는 구청의 7개局(56개 분야의 업무 관장)이 입찰을 통해 민간에 맡겨진 상태다.
이중 쓰레기청소등 43개업무는 완전히 민간회사로 넘어갔고 4개 업무는 민.관합작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고속도로관리등 9개업무는 구청 스스로 입찰을 따내 맡고 있다.
물론 낙찰을 받으려면 그 민간회사는 남보다 뛰어난 서비스와 가격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구가 88년부터 지난해말까지 민간에넘긴 업무의 계약금액은 모두 6천2백21만3천파운드(7백77억7천만원).이를통해 1천3백62만2천파운드(1백70억원)의 예산이 절약됐다고한다. 민간회사와의 계약은 3년.5년 단위로 하고 있다.이 기간이 끝나면 희망 회사는 다시 입찰에 참여해 낙찰을 받아야 한다. 이같은 공무원 업무의 민간 매각은 경쟁시대에 자치단체가 살아남기 위한 고통스런 몸부림의 흔적이다.
이에따라 이 구청 공무원들은 주로 정책입안.인사등 핵심업무만맡고 있다.
심지어 구 홍보업무까지 민간회사로 넘어가 시민들로부터 『해도너무 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기까지 한다.
취재기자를 안내한 공보실의 클레리 켈리(36.여)는 얼마전까지 SAS홍보회사의 직원이었다가 홍보업무가 입찰로 이 회사에 넘어오면서 본의아닌 공무원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민간회사로 넘어가면서 감원바람도 휘몰아쳤다.
가장 많은 인원이 줄어든 곳은 쓰레기수거와 도로청소.
무려 7백명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공직사회를 떠났다.
『공직사회가 민간회사로 넘어가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지요.
경쟁력을 잃을 경우 그것이 사기업이든 공직사회든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구업무를 민간에 앞장서서 넘겨오며 「개혁」의 칼을 휘둘러온 로저 알러드(48)입찰회계팀장의 말이 여운을 남긴다.
런던 서쪽 외곽에 자리잡은 인구 28만1천명의 일링區 역시 지난해 2월10일 기술국을 민간에 매각했다.
***주민들 반응좋아 기술국이 맡고 있는 업무는 도로청소.고속도로관리.쓰레기수거등 36가지.일링구 기술국을 대신해 「공무」를 수행하고 있는 회사는 연매출액 6억파운드 규모의 중견기업인 브라운 앤드 루츠(Brown & Roots)社.미국 휴스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국계 증권투자회사다.
계약금액은 94년부터 5년동안 매년 3천만파운드씩 모두 1억5천만파운드(1천8백75억원).
지금까지 낙찰가 규모가 영국 최대여서 단연 주목을 끌었던 곳이다. 이 회사는 당시 입찰에서 일링구청 기술국에서 퇴직한 공무원들이 만든 용역회사등 응찰한 9개사를 모두 따돌렸다.입찰가격과 제안서비스에서 단연 우세했다.
계약금액 年3천만파운드가운데 브라운 앤드 루츠사가 매년 이익으로 챙기는 몫은 1%에 불과한 30만파운드.그러나 이 회사는시민들의 가려운데를 긁어주는 사업에 참여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있다. 『공무원 업무의 민간 매각제도 도입이후 주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낸 세금을 구청에서 알뜰하게 사용하는데 만족하고 있습니다.그동안 돈을 쉽게만 써온 공무원들에게는 고통스럽겠지만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지요.』 오스본모스 대표는 입찰제도가 예산을 절감하고 서비스도 높일 수 있어 주민들로부터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기술국을 인수하자 일링구청 직원중 1천2백여명은 공무원신분을 잃고 회사원이 됐다.
20여명은 인수와 함께 은퇴등으로 직장을 떠났다.현재 남아 있는 공무원 출신은 1천1백60여명.회사관계자는 올해도 감원바람은 계속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기술국이 민간회사로 넘어가자 일부에서는 승진기회가 많아졌다며반기기도 했으나 대부분 공무원은 크게 반발했다.
구청의 공무원노조가 앞장서 파업직전까지 갔으나 「대영제국 부활」의 기치를 내건 행정혁명의 대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년 10월이면 영국의 모든 지방정부는 싫든 좋든 한판의 생존레이스를 벌여야 한다.이때 전지방정부는 지방행정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민간에 공개입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런던=方元錫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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