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탈주’로 풀어낸 여죄수 탈옥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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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호 08면

“다 미쳤어! 세상은! 나의 심장까지도/ 매일 규칙적이던 시계의 초침마저도/ 모두 제멋대로 뛰어/ 마치 사랑에 빠진 듯/ 이젠 모두 내게서 다 벗어나!(중략)/ 나는 이제야 자유야 나는 이제 시작해(후략)”(‘If I were God’)
강렬한 비트의 드럼과 기타 소리가 공연장을 휘감는다. 번쩍이는 조명이 빠르게 무대를 훑는다. 경쾌하다. 후련하다. 신들린 듯한 연주와 노래가 단박에 관객의 심박수를 높인다.

독일영화를 각색한 ‘밴디트’

1월 9일 앙코르 공연에 들어간 뮤지컬 ‘밴디트-또 다른 시작’은 일종의 콘서트형 뮤지컬이다.
6명의 여죄수로 결성된 록밴드 ‘밴디트’의 탈옥기를 다룬 작품은 중간 휴식 없이 1시간40여 분간 드라마와 극중 콘서트를 뒤섞으며 진행된다. 신나게 포효하는 도입부는 “우리의 마지막 콘서트를 하던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시계가 멈추어주길 바랐다”라는 내레이션과 맞물리면서 비극적 결말로 ‘점프컷’한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그 미스터리를 푸는 과정에 관객이 빨려든다.

지난해 11월 30일 문화일보홀에서 초연한 ‘밴디트’는 꾸준한 입소문으로 관객몰이에 성공한 창작 무비컬이다. 독일 영화 ‘밴디트’(1997)의 판권을 2005년 ㈜문화예술 렛츠(대표 박우화)가 사들여 뮤지컬로 만들었다. 개봉한 지 오래된 데다 국내에서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영화를 모티브로 해 지명도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래서 신선하다.

게다가 ‘여죄수 록밴드의 탈옥기’라는 줄거리를 창작 수준의 각색을 통해 세련되게 탈바꿈시켰다. 극작과 작사를 맡은 정영씨는 “단순히 등장인물만 한국화한 게 아니라 이들의 갈등과 고민도 국내 관객에 맞춰 새롭게 해석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화 ‘밴디트’가 여죄수 네 명의 탈옥 이후에 초점을 맞춘 로드무비라면, 뮤지컬은 록밴드의 결성 과정과 이들의 자전적 스토리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또 영화에서 강제로 인질이 됐던 청년이 뮤지컬에선 이들의 탈주를 돕기 위해 자청하고 나선 아이돌 스타로 변형됐다. 영화에서 인질 청년으로 인해 멤버들 간에 불화가 발생했던 걸 상기하면, 남녀를 아우르는 연대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뮤지컬은 이들의 탈옥을 ‘청춘의 속박과 비상’으로 풀어간다. 탈옥 이후의 혼란도 청춘의 사회화를 은유하는 것으로 읽힌다.
극중 한경애의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어디로 탈옥한 걸까”라는 대사가 대표적이다.

영화에서 빛을 발했던 록음악이 20, 30대가 주를 이루는 관객과 흥겹게 어우러지는 것도 강점이다. ‘If I were God’ ‘Another sad song’ ‘Puppet’ 등 원작 O.S.T에 ‘꺼져버려’ ‘다시 한번’ 등 국산 넘버도 가미했다.

극중 밴드 멤버로 출연하는 인디밴드 ‘벨라마피아’의 곡을 뮤지컬에 맞춰 개사·편곡한 것들이다. 3월 2일까지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영화 밴디트(1997, 국내 개봉 1999)
감독 카차 폰 가르니에 주연 카차 리만·야스민 타바타바이·니콜레트 크레비츠·유타 호프만·한네스 야니케 러닝타임 111분

교도소에서 록밴드를 결성한 네 명의 여죄수가 경찰 호송차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자유를 만끽하며 자매애를 다져가는 여정 속에, 탈주 사실 때문에 음반이 히트하고 미디어는 검거보다 특종에 열을 올린다. 삽입곡과 영상이 뮤직비디오처럼 어우러지는 음악영화의 매력이 물씬하다. 최후의 게릴라 콘서트를 마친 뒤 록스타처럼 군중 위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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