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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서울대학교>18.대학촌 課外바람타고 향락의 거리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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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대 앞 관악구신림9동241번지 일대 속칭「녹두거리」로 불리는 대학촌에서 주점「태백산맥」을 운영하는 배명섭(裵明燮.42)씨는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90년대 들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난 카페.호프집 등에 대학생 손님들을 빼앗겨 심 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문을 나서 도보로 10분거리인 녹두거리는 원래 서울대생들이 찌개 하나를 시켜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새 토론을벌이던 곳.「녹두거리」라는 이름도 80년대초 녹두부침으로 유명하던 「녹두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제 녹두집 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녹두거리에는 사방 2백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술집 1백5곳,당구장 25곳,오락실 8곳,노래방 16곳,비디오방 26곳이 몰려 있어 학생들에게「녹두 라스베가스」로까지 불린다.
이 부근 대학촌에는 5천여명의 서울대생들이 하숙생활을 하고 있고 이보다 많은 1만여명의 고시준비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어 2백50여개의「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기도 하다.
이곳이 향락거리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중.고생 과외금지조치가 풀린 89년부터.과외지도로 주머니가 넉넉해진 서울대생들의 소비성향이 변하면서「청벽집」「달구지」등 주점들은 문을 닫고 최신 카페들이 들어섰다.
벽에 걸린 TV에서 홍콩 스타TV가 방영되고 학생들이 1병에4천원 하는 미제 밀러맥주를 홀짝거리는 등 유흥가 부근 카페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들이 이제는 이곳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가 91년 재학생 5백4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과외지도를 하는 학생이 63.4%,이중 한 달에 2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학생이 97.2%였으며 30만원이상도 68.9%에 달했다.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이기춘(李基春)교수는『집에서 한 달에 20만원의 용돈을 받고 있지만「유흥비로 쓰기에 넉넉지 못해」과외지도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쉽게 번 돈이라 쉽게 쓰는 것 같습니다.미국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학교식당의 허드렛일.접시닦기 등「육체노동」을 통해 생활비를 벌지요.심지어 방학 동안 알래스카의 통조림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이렇게 번 돈을 마구 쓸 수 있겠습니까.』84년부터 90년까지 美워싱턴大에서 유학생활을 한 이명균(李明均.천문학과)교수의 말이다.
서울대 근처에 향락문화가 번지고 고시원들이 난립하면서 운동권문화와 함께 명백을 지켜 오던 인문.사회과학 서점들도 덩달아 홍역을 치르고 있다.서점「열린 글방」은 이미 오래전 문을 닫았으며「전야」는 경영이 어려워 지난 1월21일 3번 째 주인을 맞았다. 과거 사회과학서적을 주로 다루던「광장서적」의 유리창에는「서울대교재.고시서적.사법시험.행정고시」라는 큼지막한 글자 밑에 작은 글자로「각종교양서적」이라 씌어 있어 변화를 실감케 한다.최근에는 아예 고시서적 전문서점이 생겨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녹두거리의 실상을 잘 나타내는 것은 서점이 8곳뿐인데 반해 만화가게는 19곳이라는 현실.
***○… 外地人 몰려들어 …○ 서울대의 관문격인 지하철2호선 신림역 부근과 서울대입구역 부근은「여관촌」이 성시를 이루고있다.신림역 부근 1백30여개,서울대입구역 부근 60여개 등 서울대 일대에 2백여개의 여관이 성업중이다.이는 울산시 전체의여관수 2백7개에 필적하는 숫자며 신촌일대 40여개의 5배다.
고객들은 주로 단란주점 등 인근 유흥업소에서 밤을 즐기는「외지인」들.이들에 의해 서울대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오염돼 간다.
美 하버드大 부근의 하버드스퀘어는 하버드大 기숙사를 중심으로펼쳐진「대학촌」.
폭 1백50m정도의 원형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펼쳐진 도로를 따라 상점들이 펼쳐져 있다.상점들은 노상카페나 샌드위치 등을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이곳의 명물은 각종 외국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아주 싼 가격에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이「세계 학문의 중심」인 하버드大의 특성을나타내고 있다는 게유학생들의 설명이다.
여기서 불과 5백m 떨어진 센트럴스퀘어 부근 거리는 강도범죄가 끊이지 않지만 하버드스퀘어는 심야에도 여성들이 안심하고 돌아다닌다.
서울대 앞 녹두거리는 한때 경찰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는「범죄의거리」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 학생들 야간순찰 …○ 유흥업소들이 심야영업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을 무렵 녹두거리는 손님들이「건전한」학생들이라는이유로 경찰이나 구청에서 심야영업을 묵인해 왔다.
『93년부터 야한 차림의 여자들이 거리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강남.신촌 등지에서 술을 마시다 업소가 문을 닫을 무렵 이곳을 찾는 거지요.그 뒤를 따라「건달」들도 몰려들었습니다.』「태백산맥」주인 裵씨의 말이다.
이들로 인해 녹두거리가 몸살을 앓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서울대생 30여명은 지난해 6월「녹두거리 규찰단」을 조직해 야간순찰을 돌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찰의 단속으로 뜸해졌지만 당시에는 오토바이 폭주족까지 몰려들었습니다.심지어 여자들이 나오는 술집도 3~4곳 있었습니다.』「녹두거리 규찰단」의 일원으로 활약했던 사회대 盧모(23)군의 말이다.
녹두거리의 변화는 제 문화를 갖지 못하고 대중문화에 휩쓸려 가는 서울대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특별취재반〉 ◇도움말 주신 분▲李基春 서울대가정대교수▲李明均 서울대자연대교수▲權薰貞 서울대가정대교수 〈다음회에는 李壽成총장 인터뷰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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