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高 여파 개도국도 明暗-동남아.중남미,외채 눈덩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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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달러약세와 엔.마르크 강세의 회오리가 지구촌경제 구석구석으로파고들고 있다.
국제외환시장의 강풍은 지난 주말을 고비로 잠잠해지기 시작했지만 바람은 이제 지구촌경제 시대를 살아 가는 세계인들의 피부에까지 와 닿고 있다.
달러값.엔값이라는 통화가치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최근의 달러 약세라는「동전의 앞면」은 엔이나 마르크의 강세라는「동전의 뒷면」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이번 3대 기축(基軸)통화의 가치급변 역시 얻은 자와 잃은 자를 갈라 놓고 있다.가장 많이 얻은 쪽으로는 미국이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달러급락으로 미국경제는 자동차.컴퓨터 등 첨단산업에서부터 하와이와 월트 디즈니 등 관광업,그리고 부동산업에 이르기까지 호황의 꿈에 부풀어있다고 소개했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자동차 빅3와 마이크로소프트.컴팩 등 컴퓨터업계는 그동안 일본.독일업체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 왔지만 이제 달러약세에 따른 가격경쟁력 강화로 미국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 이라는 예상이다. 또 월트 디즈니 등 관광업계와 부동산업계는 일본 등 강세통화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손님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똑같은 돈으로도 미국에 가면 보다 많이 사고 즐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여행자들이 맥도널드 햄버거로 한 끼를 떼우는데 미국에서는 평균 2.3달러면 충분하지만 독일에선 3.3달러,일본에선 4.3달러가 필요하다고 전한다.기본적인 물가차이도 있었지만 달러급락이 가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
독일 및 일본여행자들의 입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하와이와 플로리다의 호텔숙박료는 불과 몇 개월새 10%이상 싸졌다.
이에 비해 일본은 新엔高로 이제 겨우 바닥을 탈출한 경기가 다시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기업들은 기술혁신과 감량경영을 통한 엔高흡수도 더 이상은 역부족이 아니냐는 위기감에 싸여 있다.도요다자동차의 경우 엔화가 달러당 1엔 절상될 때마다 연간 1백억엔의 손실을 입게 된다는 분석이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야 당장 행복할지 모르나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기업이 경쟁력약화에 시달리고 있는 점은 그만큼 힘겨울 그들의 미래상을 예고해 주는 것이다.
독일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하다.오히려 마르크강세를 즐기는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지금까지 독일은 마르크강세를 전후(戰後)독일경제 부흥의 상징으로 여겨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국민총생산의3분의 1이상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마르크강세가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는 아니다.정부는 아직 여유있지만 기업들은해외시장에서 미국기업들에 밀리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선진국들의 통화가치가 급변한 틈바구니에서 개발도상국들도명암이 엇갈리고 있다.무엇보다 엔이나 마르크로 표시된 외채를 많이 안고 있는 나라들은 이들 통화가치가 올라간 만큼 고스란히빚이 불어나는 불행을 맞았다.
동남아의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유럽의 스페인.포르투갈 등이대표적인 나라다.달러부채가 많은 중남미국가들도 최근 달러화가 이들 통화에 대해서는 유독 강세를 보여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더욱이 이들 개도국은 외국의 기술과 자 본에 기대어 경제성장을 모색하고 있는데 멕시코사태이후 외국투자가들이 계속 등을 돌려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반면 한국이나 대만과 같이 외채부담이 적고 자체 자본 및 기술력을 겸비한 나라는 경쟁관계에 있는 개도국들이 휘청거리는 사이에 이들의 추격을 뿌리칠 호기를 맞은 것으로 평가된다.
金光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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