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32.獨 체르니츠마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독일은 흔히 지방자치제도가 가장 완벽하게 시행되고 있는 나라의 전형으로 꼽힌다.
최소단위 행정조직인 동(洞.게마인데)의 의원과 동장을 주민직접선거로 뽑는 것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는 나라전체가 국민들의 참여를 기초로 한 자치속에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6개의 주(州.란트)가 저마다 독자적인 헌법을 갖고 있어 행정기구나 주민대표들의 임기,심지어 교육제도까지 다를 정도로 지자제가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국민학교가 4년과정에서부터6년과정까지 주마다 제각각인 나라가 바로 독일이 다.
폴란드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舊동독 브란덴부르크주 슈프레 나이세군(郡.크라이스)의 체르니츠라는 마을.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두가지다.90년10월 독일통일 이후 지자제가 새로 도입된 구동독지역에서 지자제가 어떻게 정착돼 가고 있는지,그리고 구동독주민들의 최대 현안인 실업문제 해결에 과연 지방자치단체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서였다. 『우리마을의 자치제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물론 구동독 시절에도 지자제는 있었지만 중앙당에서 지명한 사람이 선출됐기 때문에 민주적인지자제는 아니었지요.』 지난해 3월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임기 5년의 동장(독일에서는 최소행정단위인동장부터 수도 베를린의 시장에 이르기까지 직함이 모두「뷔르거마이스터」로 같다)에 선출된 디트마르 하르퉁(43)의 설명이다.
인구 1천5백64명인 이 마을의 건물은 다른 구동독지역과 마찬가지로 낡고 우중충했으나 도로는 깨끗했다.지난해 하르퉁이 동장에 취임하면서 최초의 사업으로 마을의 길을 새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동의회가 도로포장을 최초의 사업으로 결정하자 주민들의 반발이 있었지요.우선순위에서 급하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구동독시절 같으면 무슨일을 하든 아무 관심도 없던 주민들의 참여의식이 크게 높아진데 놀랐습니다.』 주민들은 결국 마을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외부기업 유치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도로망 정비가 시급하다는 의회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자유민주주의제도가 도입되면서 생전 처음으로 자기마을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운영하게 되자 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달라져 법률상 최소한 3개월에 한번씩 열게 돼있는 동장주재 동회의가 지금까지 매달 1회이상 열리고 있다.아직 지자제도입 초기단계라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 것이 하르퉁의 설명이다.
이 마을의 지방자치단체는 동장과 역시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12명의 동의원으로 구성돼 있다.대부분의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모두 무보수의 이른바「명예공무원」,우리 말로는 자원봉사자다.
즉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되지만 월급은 받지 않고 마을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것에서 독일의 지자제는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다만 동장인 하르퉁의 경우 휘발유값.옷값등의 명목으로 월1천1백마르크(약 55만원)의 품위유지비가 지급 된다.
동장이나 동의원들은 대부분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어 이 때문에 동정(洞政)은 주로 일과시간이 끝난 오후6시 이후에 이뤄진다.그러나 이 마을의「작은 정부」안에는 총무.재정.문화.사회.
교육.건설및 도시계획등의 위원회와 위원장이 있어 중앙정부 못지않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스포츠클럽 人氣 이런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도 우리로선 부러운 수준이다.즉 이 마을은 학생수 2백48명의 국민학교와 취학전 어린이 1백60명을 수용하고 있는 유치원을 비롯해 소방서.실내체육관 2개,축구용 잔디구장 2개등 남부럽지 않은 공공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다 회원 2백54명의 스포츠클럽과 46명의 젊은이들이 주축인 문화클럽도 있어 주민들에게 여가선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스포츠클럽의 경우 축구팀은 郡대표팀이고당구의 경우는 분데스리가 수준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자랑거리다.
문화클럽은 정기적으로 음악연주회나 연극.전람회등을 개최한다.이러한 공공시설은 모두 동장이 관할하고 있다.
『통일이후 다른 구동독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도시권으로 빠져나가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마을은 오히려 늘었습니다.도시 못지않은 여가선용.문화생활 기회가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마을에도 문제는 많다.구서독의 여느 마을처럼 복지마을로 만들기 위해선 투자할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선 올해만 해도 상.하수도의 재정비,학교의 난방시설과 컴퓨터등 학습교재마련,유치원 주방설비 교체등을 해야 한다.
***三星코닝도 진출 문제는 역시 돈이다.지난해 이 마을의 수입은 3백50만마르크였는데 지출은 6백만마르크였다.주정부의 보증으로 주립투자은행으로부터 2백50만마르크를 차입한 것이다.
수입은 마을에 있는 24개 업체로부터 징수하는 법인세.토지세등1백50 만마르크와 주정부로부터의 소득세 할당분 1백만마르크가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마을에 하나라도 많은 업체를 유치하기 위해노력하고 있습니다.마을의 세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현재 1백여명에 달하는 실업자를 구제하는데도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 이 마을에는 지난해 3월 진출한 한국의 삼성코닝이 약 5백명의 주민을 고용,최대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하르퉁 동장은『구서독의 기업들도 외면했던 우리 마을의 유리공장을 한국기업이 인수해 준데 대해 주민들은 매우 고마워하고 있다』며『이제 실업자 1백명을 고용해 줄 수 있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전력(全力)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란덴부르크=劉載植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