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새로운 代案세력 나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우리나라가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 몰리고 있다.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올해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룰 전망이다. 10년 전의 사이클을 재현하려는 미국이 그러하고, 10년이 넘는 장기불황을 마감하고 고도성장을 예고하는 일본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몸을 낮추고 있다. 카드 거품, 부동산 거품에 따라 국내 소비는 위축되고 있고 미래의 성장을 담보할 지식력의 육성에는 국가비전이 없다. 언제 건실한 성장 기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경제 침체와 더불어 사회 또한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혼율, 낮아지는 출산율이 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이미 걱정할 수준을 넘었다. 그리고 빈부격차의 확대와 사회적 탈 권위 현상은 사회공동체 해체의 수준에 접근한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한결같이 나타난 국민 대다수의 마음은 이 땅을 떠나고 싶다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젊은이들이 반미 촛불시위에 참여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약속의 땅' 미국으로 가고 싶어 한다.

상황이 어려워도 꿈과 희망이 있으면 참을 수 있다. 군사독재 아래에서는 민주화라는 대의와 희망이 있었다. 또 야당이 있어 대안세력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운동의 구심점이 없다. 아마도 노무현 정부는 '우리'를 믿고 이 위기상황을 함께 극복하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이 위기상황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난 1년간 이 정부가 위기상황을 더욱 부채질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현재의 야당은 어떠한가. 대안이 되기에는 너무나 부서져 버렸다. 대선자금 여론재판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억울함을 감안하더라도 좀더 일찍 수구의 껍질을 벗고, 좀더 일찍 부패의 업연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그러므로 현재의 여야 정치권만으로는 대안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제는 비정치권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구심점과 대안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세력은 본질적으로 발전세력이어야 하고, 질서세력이어야 하며, 개혁세력이어야 한다.

첫째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발전세력이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를 퇴보시키는 세력들의 범람 속에서 의연하게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나라를 3류 국가로 추락시키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식 통치방식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야 하며, 과학기술입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사관계는 공정하고도 합리적으로 바뀌도록 해야 하며, 경제정의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로, 질서세력이어야 한다. 우리의 사회질서와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해체되는 공동체의 구심점을 회복하며, 선진국형 법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개혁세력이어야 한다. 부패를 척결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생산적이고도 혁신적인 정부를 구축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국토와 도시, 의료와 복지, 그리고 환경과 문화부문에서 제도개혁을 촉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투쟁과 지역분할에 치중하는 정치를 국가경영이 중심이 되는 정치로 바꿀 수 있도록 정치개혁을 촉구해야 한다.

85년 전 3월 1일 우리의 선조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나섰다. 이 나라가 이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다시 후진국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이 상황을 직시하고 흩어진 국민의 힘을 모을 구심점이 필요하다. 바르고 합리적인 개혁을 추진할 새로운 대안세력이 절실한 때다.

이각범 KDI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