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몰입교육 한발 앞선 일본에서도 “원어민 교사 구하기 가장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본의 도쿄 남부 시즈오카(靜岡)현에서 사립 가토학원이 운영 중인 교슈(曉秀)초등학교가 최근 공개한 1학년 수학 시간.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뺄셈 문제를 냈다.

“There are ten purple teddy bears and seven green ones. How many more purple teddy bears?”(보라색 테디베어 10마리, 초록색 테디베어는 일곱 마리. 보라색 쪽이 몇 마리 많은가요?)

어린 아이들은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눈빛을 초롱거리며 영어로 대답했다.

“Ten minus seven equals three. There are three more purple teddy bears.”(10 빼기 7은 3. 보라색 곰이 3마리 더 있어요.)

1992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영어 몰입교육을 시작한 이 학교의 학생들은 제법 영어 말하기에 익숙해 있었다. 이 학교는 1~3학년에 대해선 전체 과목의 70%, 4~6학년에 대해선 절반을 영어로 가르치고 있다.

수업은 학생들을 9명으로 분산해 가르친다. 철저한 소인수 교육이다. 이 학교 관계자는 “원어민과 말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학생들이 영어에 푹 빠져 제대로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졸업할 때쯤 되면 학생들은 영어에 자신감을 갖게 돼 80%가량이 국제학교인 교슈중·고에 진학한다.

군마(群馬)현 오타(太田)시가 교육특구 차원에서 2005년 4월 문을 연 ‘군마국제아카데미(GKA)’는 일본의 유일한 정부 공인 ‘이머전(immersion) 교육’ 학교다.

개교 3년째를 맞아 재학생들은 영어 말하기가 일상생활화됐다. 지난해 12월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견학을 가기도 했다. 3년 만에 규모도 급성장했다.

학생 수가 개교 당시 166명에서 451명으로 늘었고, 교원은 15명에서 39명으로 증가했다. 교원 39명 가운데 19명은 외국인이다. 효율적인 영어 교육을 위해 원어민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학급 담임을 맡는 ‘2명 담임제’를 하고 있다. 올해는 중학교 과정을 개설하고 중학교 전담교사 10명도 신규 채용한다.

이 학교의 이노우에 하루키(井上春樹) 부교장은 “원어민 교사 확보가 가장 어려워 이머전 교육은 원어민 확보와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영어권 국가에서 교원 자격증을 딴 뒤 최소 2년간의 현장 경력 보유자를 찾다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교사의 절반을 원어민으로 채우기 위해 미국의 자매 도시에 부탁하거나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연중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내각 때부터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반쪽짜리 영어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영어를 일본어와 함께 주요 언어로 병용하자는 급진적 실용주의까지 나왔다. 그러나 원어민 교사 확보가 어려워 일본의 이머전 교육은 개별 학교 차원에서 어렵게 진행되고 있다. 그나마 교슈·KGA처럼 인정받는 곳은 전국적으로 3~4곳에 그친다.

GKA는 일본 정부의 교육개혁 성과 사례로 꼽히지만, 동시에 영어 이머전 교육의 어려움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2002년 말하기·듣기와 같은 실용영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도입한 셀하이(SELHi)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은 ‘수퍼 잉글리시 랭귀지 하이스쿨’ 프로그램의 약자. 일 정부는 영어교육 환경이 준비된 고교에 대해선 3년간 350만 엔(약 32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그러나 올 1월 현재 문무과학성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고교는 전체 5300여 곳의 3%인 169곳에 불과하다. 일선 학교가 자체적으로 영어교육 여건을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이머전(immersion) 교육=2개 언어 구사를 목표로 특정 외국어 환경에 몰입한다는 뜻. 모국어에다 도덕·국사 이외에 수학·과학 등의 과목을 외국어로 배우는 언어교육 방법. 1960년대 캐나다에서 에스파냐어·프랑스어를 이런 방식으로 가르친 후 비영어권에서 영어교육 방법으로 발전됐다. 일본에선 영어판 검정교과서를 개발해 영어로 교과과정을 배우는 학교와 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 "MB, 美 매장서 한 시간 싸워 옷값 깎아

▶ 이해찬 "'유 아 베리 웰컴' 노대통령이 그랬으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