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왜? 왜? 어릿광대 선생님의 재미있는 수학

중앙일보

입력

'삐에로' 배종수 교수
창의 사고 키우는 교육 제안

"단순암기가 수학 망쳐…
개념·원리·법칙으로 접근을"

“선생님요? 너무 좋으시죠. 아이가 수학을 재밌어하고 자신감이 붙었어요. 굳이 학원 다니지 않아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도 항상 수학은 백점이에요.”
‘생명을 살리는 수학교육연구소’에서 만난 학부모 이미라(33·도곡동)씨는 이곳의 수업방식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여기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총 9개 반의 수학 수업을 맡고 있는 이는 단 한 명. 서울교대 배종수(60) 교수다. 대학 강의, 교과서 편찬, 각종 강연 및 세미나에 주일학교 교사까지 하면서 주당 18시간에 이르는 수업을 강의료 없이 하고 있다.

배 교수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수학을 가르치기 위해 어릿광대 복장으로 수업을 해 ‘삐에로 교수’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아이들이 수학을 못하는 것은 아이 잘못이 아니라, 어렵고 재미없게 가르치는 선생님 탓”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은 우수하지만 창의력이 낮은 이유도 잘못된 수학 교육에 있다는 것.

“왜 3÷½이 6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왜 그렇게 풀어야하는지도 모르면서 단순 암기로 문제풀이 훈련만 하는 것은 수학 교육을 망치는 길입니다. 개념·원리·법칙으로 접근해야지요.”
배 교수는 “우리가 수학적 개념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학 원리를 가지고 아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 보도록 할 때 의미 있는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세 가지 유형의 문항을 보여주었다.
 
[1] 6000÷20은 얼마입니까?
[2] 6000÷20의 계산 과정을 쓰시오.
[3] 6000÷20을 다음과 같이 계산하는 이유를 설명하시오.
 
6000÷20=600÷2=300
[문제 1] 왜 600÷2=300인지 2가지로 설명
[문제 2] 왜 6000÷20=600÷2인지 설명

현장의 많은 의견을 들어본 결과, 위 세 가지 문항 중 학생·학부모들이 선호하는 문항은 3번 유형이었다고 한다. 교육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출제하지 않고 있다. 배 교수는 “학교 시험에서 전체 문항의 10분의 1만이라도 창의적 사고력을 묻는 문제를 내자”고 제안했다.
3번 문제는 2007학년도 서울교대 영재반 선발시험 마지막 전형에 실제로 출제되었던 문항이다. 82명의 아이들이 응시한 시험이었는데 20점 만점에 아이들은 평균 2.9점을 받았다. 수학에 소질이 있다는 아이들조차 “왜?”라는 질문에 당황했다. 많은 학원에서 창의사고력 수업을 열고 있지만 대부분 흉내만 내고 있다는 것이 배 교수의 지적이다.
“공교육에서 먼저 변화가 일어나 아이들의 진짜 창의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치러진다면 결국 사교육도 따라가지 않을까요. 사고력을 키우기 위한 사교육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그는 현재 ‘2007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3·4학년 수학 교과서의 편찬위원장이다. 본인의 소신을 바탕으로 독창적으로 개발한 교수·학습 지도 모형을 교과서에 적용하려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앞서갈 수 있는 교과서를 개발할 것”이라며 의지가 대단했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국 수학교과서를 영어로 출간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언젠가 미국에서 한국 수학교과서로 수업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올바른 수학 공부법을 전파하기 위해 발로 뛰는 그는 "어디에서든, 누가 참관하든, 어떤 학생을 대상으로 하든 시범수업을 펼쳐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뜻있는 학부모들을 모아 NGO활동도 벌이고 있다. 배 교수는 "우리나라와 세계 어린이들이 수학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라며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 노벨상도 탈수 있지 않겠나"며 웃었다. 

프리미엄 최은혜 기자 eh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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