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북녘동포>16.판치는 뇌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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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당일꾼은 당당하게,보위원은 보이지 않게,안전원은 안전하게 해먹는다.』 주민들의 유행어다.부패를 상징하는 이 말을 모르는귀순자는 없었다.舊소련 유학생 출신 남명철(南明鐵.33)씨는『부패가 무엇인지 인식조차 못하는 상황에 와있다』며『당중앙에서 부패의 심각성을 안다해도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유학을 떠날 때(86년)와 강습을 받으려고 일시 평양에 귀환했을 때(88년 여름)를 비교하면 외화상점이 번성하고 뇌물이 판치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외화상점이 번성하면서 외화나 바꾼 돈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 조가 늘어났다는 얘기다.
『80년대 후반부터 북송동포들은 5천만엔만 내면 평양시 거주승인을 얻어낼 수 있게 됐다』는 북송동포 출신 정기해(鄭基海.
52)씨의 증언도 뇌물이 80년대 후반부터 본격 통용됐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그는『평양거주 뿐 아니라 원하는 직 책과 아파트가 제공된다』며『갖가지 사회통제가 존재하는 한 뇌물도 없어지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뇌물이 도처에 산재돼 있음을 보여주는 윤웅(尹雄.29)씨의 증언-. 『무엇인가 변화를 원하는 아쉬운 입장의 주민들은 재소(在蘇)임업이면 행정위원회 노동과및 근로단체 비서,직장조동(이동)이면 노동과,대학입학이면 대학모집과,입당이면 군당원등록부및里당비서,승진이면 초급당비서,사건이면 안전원,여행증이면 郡행정위원회 2부,군입대면 道군사동원부등 해당 부서에 뇌물을 고여야한다.주민 누구나 이를 잘 알고 처신한다.』 ▲관료사회=당기관일꾼들의 부패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대개 내부처리고 미공개기 때문이다.귀순자들에 따르면『당기관 일꾼이 부패로 문제를일으키면「사람과의 사업에 실패했다」는등 우회적 표현을 쓴다』고한다.행정기관 일꾼의 부패 는 드문드문 공개재판으로 드러나 주민들이 입방아를 찧는다.
부패의 먹이사슬에 관한 김태범(金泰範.33)씨의 증언-.
『성천군 행정위원회 상업부위원장 김성숙(숨은 영웅)이 식량.
국가공업품을 마음대로 주무르다가 들통났다.윤택한 생활에 집에 식모까지 두어 주위의 눈총을 샀다.그녀는 군.시.도급 간부중 일부를 매수하고 중앙당에도 선물을 보내는등 여러 곳 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군안전부가 86년에 그녀의 부패혐의를 잡고 치려다가 담당안전원이 북창화력발전소 담당으로 도리어 쫓겨날 정도로 위세가 등등했다.안전부 제의서가 계속 상부로 올라갔지만 당에서 이를 깔아뭉갰다. 김성숙과 관련된 부패에 도.중앙 간부들까지 연루돼 시.도 검찰도 손대지 못하다가 91년에야 중앙검찰소가 수사에 착수해 부패의 전모가 드러났다.그녀는 92년봄 직위와 영웅칭호를박탈당했고 20년 교화형을 언도받았다.』 金씨의 이어지는 증언-. 『군행정위원회 서기장이 부인과 짜고 군인민병원의 환자용 쌀을 빼내다가 들통난 사건도 있다.87년부터 91년까지 5년간12t이나 뒤로 빼돌렸다.서기장은 신장염 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어 농장으로 추방되고 쌀을 직접 빼낸 부인은 18년 교화형을받았다.』 당국이 舊소련.동구권의 사회주의 몰락이후 부쩍 반관료주의 투쟁을 벌이는 것은 관료조직내의 광범한 부패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관료부패 가운데 외화관련이 증가한 것은 새로운 추세다.
『91년 여름에 무역은행 출금과장(女)이 부정혐의로 5년형을받은 일이 있다.그녀의 남편은 당중앙 조직지도부 지도원이었는데그도 출당당했다.
당시 당중앙에서 외화대출을 동결한 상황이었는데 출금과장이 5백달러를 받고 인민무력부에 20만달러를 대출해준 사건이 들통났다.』(김명철.35) 『평성시 외화벌이 책임자(女)와 남편이 86년에 엄청난 외화낭비 혐의로 공개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일이 있다.그녀가 평양의 보통강 무역회사와 연계해 외화벌이 사업을 하면서 외화를 개별적으로 챙긴게 화근이었다.외화부문의 부패에 대한 경고용으로 대학생 자녀들까지 무보수 노동형에 처하는등 강한 처벌을 내렸다.』(김태범) ▲공장.상업부문=귀순자들은생필품을 취급하는 상업부문과 급양(양정사업소.식당등).공장자재관리부문에서 뇌물이 많이 오간다고 증언한다.
『만포타이어공장에서는 당비서.공장지배인.직장장등이 타이어공급계약 과정에서「국가계획분을 다주겠다」며 대가로 다른 물품을 요구하는게 관례였다.
타이어가 아쉬운 속에선 뇌물을 주고라도 공급분량을 늘리는게 중요하다.전반적인 생산량 부족때문에 계획분의 30%정도밖에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뇌물을 받더라도 국가가격에 의거해 상품으로 대체 지불하기 때문에 검찰등의 검열에도 걸리 지 않는다.
』(이철수.39) 『87년9월 남포시 지방자재상사 와우도공급소에서 일할 때 함흥출장소에 파견됐는데 자재확보를 위해 뇌물작전에 온통 매달려야 했다.물자를 확보해야 와우도구역내의 공장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한 뇌물거리를 잔뜩 모아 함흥의 공장.기 업소 판매과에 들이밀었다.뇌물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물자확보의 양이 결정됐다.』(정진만.47) ▲승진=뇌물공여에서일반적인 형태는 승진이나 편한 자리로 이동하기 위해 물품을 윗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어느 곳에 빈 자리가 나는지 알면 즉시 구역 노동과나 군노동과의 과장에게 뇌물공세를 시작한다.군내의 인사결정을 책임진 행정위원장.부위원장 3명(상업.교육보건.경제담당).사무장.고문등과 군당 간부과에 뇌물을 고여야 한다.간부의 인사 이동 때는80년대 초반이래 흑백TV.카세트녹음기(더블스피커)등이 뇌물로통용됐다.공장에서는 노동과장.당비서에게 고급술 2병.여과담배 20갑.찹쌀등을 뇌물로 쓴다.』(김태범) 『누구나 해외나들이를원하지만 기회가 워낙 제한돼있어 외국에 나갔다 올 때면 다음을생각해 선물을 하지 않을수 없다.외교부 산하의 외교단사업총국에서는 해외출장자들이 80년대 중반이후 간부과 지도원.과장및 당비서.조직비서등에게 1백 달러씩 뇌물을 고였다.』(고운기.45) ▲안전계통=안전(경찰)계통의 부패는 심각하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보위원.안전원들의 공장물자 빼내기가 광범하게 진행되고 있다.군안전부는 필요물자를 식료.곡산공장에서 무조건 가져간다.직위를 이용해 물자를 마음대로 쓰는 간부들이 적지 않다.』(김태범) 『장사하려면 안전원들에게 담배.맥주.가스라이터에서 시계.선풍기에 이르는 갖가지 선물을 줘야 한다.』(김광욱.27) 『안전원들의 장마당 단속 정보가 사전에 새나가기일쑤다.장사꾼들이 안전원들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안전부 감찰과직원들이 비밀거래를 적발하러 다니지만 현장을 포착해도 대개는 뇌물에 넘어간다.』(강봉학) 신의주에서 시내버스 운전사로 일한허철(許哲.24)씨는『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여도 피해자에게 흑백TV.단복등을 주고 안전원에게 뇌물을 쓰면 무죄로 나올수 있다』고 전한다.
안전원들은 범죄자들을 병보석으로 출감시켜주고 뇌물을 챙긴다.
북송동포 2세 진광호(秦光鎬.27)씨의 증언-.
『사회안전부 교화부가 관리하는 교양소에서 병보석으로 나오려면피해자에게 흑백TV 한대만 주면 된다.또는 외제담배 마일드세븐30갑에 맥주 24캔을 주면 된다.그 과정에서 먼저 담당안전원과 사업을 해야 한다.교양소에 가기 전에 안전 부 10병원에서신체검사를 받는데 주로 간장.술등을 먹고는 간염진단을 받는다.
의사.간호사에게는 5~10달러나 양복지 한벌감을 주면 된다.10병원 진단후 교양소로 보내지는데 사전 뇌물작업으로 교양소측이「인원이 많아 안받겠다」고 나자빠 지게 한다.교양소측이 안받겠다고 하면 안전부로 다시 이송되는데 담당안전부에서 죄수를 강제노동대에 보내 한두달 노동하게 한뒤 빼내준다.』 ***○… 死亡사고도 무죄 …○ ▲군대=군의 부패는『무력부에서는 무조건 떼어먹고,군단에서는 군말없이 떼어먹고,사단에서는 사정없이 떼어먹고,연대에서는 연달아 떼어먹고,대대에서는 대담하게 떼어먹고,중대에서는 중간에서 떼어먹고,소대에서는 소리없이 떼어먹고,분대에서는 분별없이 떼어먹고,전사는 전혀 못먹는다』는 유행어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박수현).
군 부패는 각 부대의 창고장에서 시작된다.
창고장을 지낸 귀순자들의 경험-.
『호위총국의 대대에는 피복담당.양식담당 창고장이 각각 있고 여단급에서 나온 냉동창고담당이 별도로 있었다.
복장.생활용품 지급을 담당하는 피복창고장은 쌀.식용유.비누.
신발등을 외부로 빼돌린다.오죽하면 인민무력부가「창고장을 3년이상 시켜서는 안된다」는 명령을 내렸겠는가.창고장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군관들에게 뇌물을 바친다.』(박수현) 『대대 창고장은휘발유.쌀 정량을 속여 조금씩 떼어 민간에게 팔아먹는다.
대대 창고장쯤 되면 주위에 붙는 사람이 많다.군관.하전사들과그 친구들을 통해 물자가 외부로 유출된다.
창고장을 하면서 군관들에게 잘보여 대학폰드를 얻는 일이 흔하다. 인민무력부 민경공급소장이 전연(전방)지역의 부대 창고를 돌며 몇년간에 걸쳐 식량 40t을 빼돌린 혐의로 86년 체포된일도 있다.』(김선일.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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