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다카르랠리>2.정혜운씨 완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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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1월3일이 밝았다.랠리 3일째인 이날 모로코 라치디아에서 오와르자자테까지 달려야 한다.모래언덕,깊이 파인 냇가가 가로놓인5백76㎞의 변화무쌍한 난코스다.
전날까지 일본의 미쓰비시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던 시트로엥의 바타넨이「사막의 라이언」답게 다시 선두로 나섰다.
이 코스는 모래언덕 등이 예측불허로 불쑥불쑥 나타나는 바람에시트로엥과 닛산의 수많은 베테랑 드라이버들도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 시간을 허비했다.
오직 로드북(지도와 나침반)에 의지해야 되는 랠리에서 타고난길눈을 가진 무쏘1호차의 비스마(49.이탈리아)는 난코스에 강해 많은 차들이 길을 헤매는 틈을 타 이 구간에서 9위의 좋은성적을 차지했다.
이 덕분에 전날 20위권 밖으로 밀려있던 무쏘 1호차는 종합11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또 2호차는 26위,3호차는 14위를 각각 차지했다.비록 이날 지원트럭 4백35호가 경기중 모로코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운전석 바로 앞유리가 깨지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레이스는 대성공이었다. 우리팀은 서서히 자신감을 갖게됐다.전날 성적부진으로 우울했던 우리 캠프가 웃음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밤 우리팀은 캠프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남은 구간에 대한 전략을 구상했다.어떻게 하면 선두와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밤을 꼬박 지새우며 토론을 벌였다.
다음날인 4일 오와르자자테에서 골리민 구간까지는 3백75㎞.
베테랑 드라이버들도 고개를 흔들어댄 험난한 구간.이 마(摩)의 구간에서 우리팀은 첫 시련을 맞았다.2호차가 제한시간을 넘겨 탈락위기를 맞은 것이다.
1백25㎞ 지점에서 커다란 모래구덩이를 박차고 나가다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곤두박질치면서 오른쪽앞 서스펜션과 스티어링기어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경기를 할 수 없게 됐다.
1호차도 종합13위로 밀려났고 3호차는 17위로 떨어졌다.이날 경기중 트럭과 모터사이클 22대가 탈락할 정도로 코스가 험했다. 가뜩이나 우리 캠프는 2호차와 밤늦도록 연락이 되지않아걱정으로 잠 한숨 잘 수 없었다.우리는 낙담했다.
2연패를 노리는 시트로엥과 무려 12개팀을 출전시켜 정상탈환을 노리는 미쓰비시,11개팀을 출전시켜 다크호스로 등장하고 있는 닛산 등 정상팀들과 대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 사실을 본사에 알렸다.
온 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사실을 알려야 되다니 비참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1월5일 골리민에서 서사하라 에스마라까지 4백86㎞의 5일째구간.다소 부진하던 미쓰비시가 종합3위에서 2위로 올라서며 1위 시트로엥과의 시간차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위와 돌이 많은 산길과 사막이 잇따라 펼쳐져 수많은 차량들이 펑크를 일으켜 애를 먹었다.종합1위를 차지한 바타넨마저 세차례나 펑크가 나는등 곤욕을 치렀다.
무쏘 1호도 전날의 낙담에서 벗어나 전열을 재정비,사투끝에 경기를 무사히 마쳤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차를 이끌고 주유소에 진입하던 중 낯익은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한국 군복을 입은 두 남녀,바로 대한민국 평화유지군(PKF)이었다.
모처럼 느껴보는 따뜻한 동포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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