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서 현대판 ‘노아의 방주’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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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을 유지하고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담요로 단단히 싸놓았다. 최정동 기자

한국을 처음 찾은 ‘태국 손님’의 주둥이는 고무밴드 수십 개로 묶여 있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 있다. 뒤트는 몸뚱이를 조련사가 단단히 붙잡고 쌀 한 톨 크기의 마이크로칩을 몸통에 넣는다. 인식번호 ‘00-066C-909D’. 26일 오전 10시30분 우리나라 최초의 ‘나일악어’가 서울대공원에서 인식표를 몸에 심었다.
이날 서울대공원에서 태국 사무트프라칸 동물원이 보내온 나일악어·난쟁이악어 등 악어 25마리가 공개됐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악어가 있는 국내 동물원은 일산의 ‘쥬쥬’ 등 극소수다. 엄마와 함께 동물원을 찾은 정지윤(5·경기도 시흥시 대야동)양이 조련사가 꽉 잡고 있는 악어 꼬리에 손을 살짝 대본다.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악어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태국에서 온 악어들은 대규모 동물 교환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몽구스·그린아나콘다 등 희귀종 19종 108마리를 포함해 모두 37종 184마리(12억2700만원 상당)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서울대공원은 한국늑대 등 33종 189마리(10억1200만원 상당)를 태국으로 보낸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노아의 방주’식 대이동이다.

이번 동물 교환은 지난해 2월 태국에서 제안했다. 파타야에 새로 동물원을 개장하기 위해 서울대공원에서 남아도는 동물들을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대신 한국에 없는 희귀종을 태국에서 보내고, 운송비 전액을 태국 쪽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모의원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장은 “번식이 잘돼 개체 수가 지나치게 많아진 종류를 내보내 관리비용을 줄이고, 대신 새로운 동물들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또 이미 보유하고 있는 종이라고 해도 외국에서 새로운 혈통을 들여오면 근친교배의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 교환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실제 교환에 1년 정도가 걸린 것도 검역·수송·서식처 마련 등 까다로운 문제가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24일 보내기로 한 우리 동물들은 태국 쪽 검역문제로 출발이 약 한 달 늦춰졌다. 동물들의 상태가 급변해 일정이 바뀌기도 한다. 나일악어 등과 함께 쿠바악어 5마리도 이번에 올 예정이었으나 출발 직전 취소됐다. 27일 아홉띠 아르마딜로 등 75마리가 추가로 도착할 예정이지만, 김보숙 동물운영팀장은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동물들이 예정대로 도착하면 검역을 거쳐 다음달 11일 공개한다.

구희령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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