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화가 사이에 꽃핀 건강한 에로티시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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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호 26면

최영림 작 ‘꽃바람’, 캔버스에 유채, 1962~68

풍만한 알몸 여체가 한겨울 추위에 더 눈부시다. 한국 화가 최영림(1916~85)과 일본 판화가 무나카타 시코(棟方志功, 1903~75)의 2인전이 열리고 있는 전시장은 꽃처럼 피어난 여성 누드화로 봄이 온 듯 포근하다. 차가운 그림, 따뜻한 그림으로 나누자면 거의 후끈한 그림 쪽이랄까. 모성 또는 여성의 생명력을 낙원의 상징으로 표현한 두 화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을 보인다.

‘최영림·무나카타 시코’전

최영림과 무나카타 시코는 스승과 제자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사이다. 일본 아오모리시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무나카타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뒤 자신만의 독특한 목판화 세계를 일궈 1956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판화대상을 받았다. 친구가 보여준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에 충격을 받아 화가가 됐지만 가장 일본적인 화풍의 작가로 이름을 얻었다. 평양 출신인 최영림은 일제강점기 평양박물관에 학예직으로 와 있던 오노 다다아키라의 지도를 받다가 그의 소개로 38년 무나카타에게 가 판화 지도를 받는다.

전시는 사승 관계에서 비롯한 두 사람의 작품 세계가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밝히고자 기획됐다. 보는 이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스토리 텔링’의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몹시 비슷하다. 다른 점은 역시 한국과 일본이라는 토양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똑같이 에로틱한 여성 이미지를 다루면서도 최영림은 지모신(地母神)의 특성을 지닌 건강한 여체를 그리는 반면, 무나카타는 일본 특유의 장식미를 바탕에 깐 대수(大首)의 몸체를 묘사한다. 불교적인 소재가 두 사람 작품에 많이 등장하지만 최영림은 종교로서의 불교보다는 민간신앙에 기댄 민속적 요소를 강조하고 무나카타는 불교 권속을 즐겨 다룬다.

또 최영림의 작품은 해학이 넘쳐흐르지만 무나카타는 화려하면서도 무서운 일본 전통의 장식성이 전면을 뒤덮고 있다.

근대미술사에서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면서도 제대로 된 연구가 드물던 한·일 화가의 겨누기로 흥미로운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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