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예매 못하는 남자, 1960년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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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술자리에서 후배들은 ‘또 한 살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심한 좌절감을 토로했다. 듣고 있는 늙은 언니의 가슴이야 찢어지든 말든. 하지만 그들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노처녀’이고, 요즘 세대의 눈으로 보면 ‘골드 미스’인 그녀. 시집갈 때를 놓친 것인지, 인연을 못 만난 것인지 판단이 모호한 30대의 그녀. 그러나 유부남, 유부녀에게는 마음껏 연애하고 유희할 수 있어 그저 부러울 따름인 그녀들!

며칠 전에도 “이제 꺾어진 70”이라며 나에게 ‘남자 후배 소개’를 주문하는 후배를 만났다.

“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선배, 나 눈 낮아. 알면서.”

물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 100% 공감할 것이다. 세상에 눈 낮은 여자는 없다. 이해하고 타협하는 포용력의 레벨 수준이 다를 뿐. 아무튼, 후배와 나는 그녀가 원하는 ‘아주 평범한(?)’ 남자의 조건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그녀가 최근에 했다는 두 건의 소개팅 이야기를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명 모두 한 번씩 애프터는 했지만, 별로란다. 그 결정의 배경에는 두 명 모두 극장이 있었다.

첫 번째 남자. 주중에 전화로 애프터를 신청했고, 후배는 ‘저녁식사 후 영화 관람’으로 데이트 코스를 추천했다. 당일, 그럭저럭 편안한 저녁식사 뒤 극장에 갔는데, 남자 왈. “잠깐 기다려요. 표 사올게요.” 오 마이 갓! 주말 저녁에 영화 보러 오면서 예매도 안 했단 말이야? 나한테 하라고 안 한 건 자신이 하겠다는 얘기 아냐? 당연히 후배가 보고 싶은 영화표는 솔드 아웃. 할 수 없이 시간 맞춰 본 영화?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2 아무리 급한 30대 남녀의 가릴 것 없는 데이트라지만 첫 데이트에서 즐겁게 볼 영화는 결코 아니다.

두 번째 남자. 인터넷 예매까진 했는데 극장 매표구 앞에서 표를 어떻게 찾는지, 어디에서 찾는지를 몰라 당황하더란다. “누구한테 물어보기라도 하지. 실내에서 코트까지 입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더라고.” 시골에서 갓 상경해 지하철 갈아타기에 맞닥뜨린 노부부? 흘깃대며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의 눈총에 후배마저 창피해서 땀이 송송 솟았더란다. “도와준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자기 혼자 쩔쩔매는 거야.”

후배의 총평은 이랬다. 일단 디지털 시대에 데이트 준비마저 뒤떨어지게 하는 센스 없는 남자, 여자에게 유쾌하게 도움을 청할 줄도 모르는 보수적인 남자는 아웃.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둘이 모두 1960년대생이고 보니, 웬만하면 그 나이 대 남자는 피해 가련다는 것. 종합하면 ‘디지털 시대에 뒤떨어진 센스 없고 보수적인 남자=60년대생’이 된다.

앞의 문장을 쓰고 바로 후회했지만(내 주변에 제일 많은 그들이 60년대생이다), 할 얘기는 마저 하련다. ‘연애의 목적’보다 ‘연애의 센스’를 먼저 키워라. 아무리 결혼이, 여자가 급해도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 연애든 비즈니스든, 철저한 물밑 작업과 준비가 선행돼야 성과가 좋다. 인터넷 예매, 이젠 당연한 거다. 시대에 발맞추지 못하면 고물차 취급을 받을 수밖에. 요즘 젊은 애들은 저녁식사를 위한 식당도 쉽게 고르지 않는다. 오죽하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삼식’이도 인터넷 검색 못한다고 삼순이에게 구박받았을까.

글 서정민 기자,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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