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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본주의 위기와 ‘친절한 자본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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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화려한 잔치 뒤에는 고단한 설거지가 남는다. 낮은 물가와 높은 성장을 동시에 이룬 골디락스 시대는 저물었다. 7년간 몰아친 유동성 파티도 끝물이다. 신자유주의·세계화 이면에 쌓인 볼썽사나운 쓰레기 더미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삐 풀린 금융자본의 과도한 질주가 낳은 후유증이다. 이제 파티 비용을 치러야 할 때가 왔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는 세계 금융시장만 뒤흔든 게 아니다. 고통스럽고 상당히 긴 경기 후퇴가 닥칠 것이란 경고와 함께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회의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헤지펀드 거물인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은 누구보다 시장경제의 혜택을 누린 인물이다. 다보스 포럼에 참가한 그의 입에서 “지금의 혼란은 자본주의의 자업자득이며 시장원리주의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발언이 나왔다. 그는 “금융시장이 자율적으로 잘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인식”이라고 했다.

 카를 마르크스의 말처럼 인간의 이기심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불안한 시스템이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폭리를 취한 초기 자본주의는 그야말로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자기 이익만 좇는 자본가의 야수적 본능 때문에 호황과 불황도 반복된다. 때로는 고통스러운 공황도 찾아왔다. 그런데도 마르크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본주의는 지배적 경제체제가 됐다. 자본주의 대신 ‘시장경제’라는 근사한 용어가 통용될 정도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가장 자본주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 존 M 케인스는 자유방임주의를 거부하고 정부의 보완책(공공지출)을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했다. 이기심을 억누르는 인간의 합리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노사 간의 타협과 사회보장제도 도입 등을 통해 구조적 모순과 분배의 불평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의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다보스 포럼에서 ‘친절한 자본주의’를 제안했다. 게이츠 회장은 “자본주의가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도 기여해야 한다”며 “이를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부르자”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는 자본주의가 최선의 시스템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 불안정성에 대한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자본주의 최대의 적은 자본가 자신이다. 엔론 사건이나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그들의 탐욕은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고 간다. 동시에 자본주의 최대의 구원자도 그들이다. 악착같이 번 돈을 선뜻 사회에 환원하면서 자본주의의 치명적 약점을 치유하는 자본가도 적지 않다. 자본주의는 그래서 타도의 대상이 되기도, 예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건지 모른다. 우리가 게이츠 회장의 친절한 자본주의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