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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 위해 … ” 젊음 바치는 일본 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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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본군 종군 위안부 피해여성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무라야마(뒷줄). 797회인 23일 집회에는 피해자의 한 명인 길원옥 할머니(81·앞줄)가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함께했다.

 일본군 ‘종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 23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797회 집회 현장에는 일본인도 있었다. 스물일곱 살의 무라야마 잇페이(村山一兵). 그는 일장기가 휘날리는 대사관 건물을 응시하며 ‘일본 정부는 책임을 즉각 인정하고 진상을 규명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2006년 4월부터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거의 매주 수요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그를 현장에서 만났다.  

 무라야마의 한국어는 상당히 유창했다. 먼저,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가와사키가 고향인데, 어렸을 때부터 ‘재일교포’ 친구들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친했던 그들의 영향으로 한일관계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1960년대 학생운동을 하다가 만났습니다. 전공투 마지막 세대라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일을 합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었죠.”

 호세이대(法政大) 정치학과에 입학한 그는 연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2003년 서울 땅을 밟았다. 정치학과나 사회학과 수업을 들으면서 나눔의 집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청소도 하고 할머니들의 말벗도 해줬다.

 나눔의 집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일본에서도 한일관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나눔의 집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 중 한 명이었고요.”

 그러다 더 큰 결심을 하는 계기가 찾아왔다. 2004년 나눔의 집에 살던 김순덕 할머니가 83세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 가족 같던 할머니의 죽음은 너무 충격이었죠. 돌아가시기 2주 전까지만 해도 같이 얘기하곤 했는데…”

 일본으로 돌아가 대학을 마친 그는 결국 ‘더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야 한다’고 느껴 2006년 할머니들 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자원봉사자가 아닌 연구원으로 할머니들과 숙식을 함께 해왔다. 현재 나눔의 집에서 유일한 일본인 연구원이다.

 “피해자이자 증인인 할머니들은 현재 109분이 살아계시지만 건강이 너무 안 좋아요. 지금 나눔의 집에서 세 분이 입원하셨어요. 하루 빨리 문제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체력 저하로 증언이나 집회 참석 등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할머니들이 많아지고 있어 더욱 가슴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한일간의 가교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위안부 피해자 관련 만화를 일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대상은 만화가 권태성씨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눔의 집에서 얻은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그린 『다시 태어나 꽃으로』. 그는 이를 번역해 인터넷에 올리다 『전쟁과 성-한국에서 ‘위안부’와 마주보다 (戰爭と性-韓國で ‘慰安婦’ と向き合う)』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펴냈다. 일제 치하인 26년 ‘연이’라는 조선 소녀가 일본군에 끌려가면서 겪는 참상을 그렸다. 그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먼저 알려진 이 만화의 한국어본은 이번 달 출간되었고, 영역본 (Born Again as a Flower)도 나왔다. 그는 번역본을 ‘네이버 재팬’ ‘야후 재팬’ 사이트에 올렸다. 사흘 정도 지나자 우익 들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악플이 쏟아졌다.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식의 거짓말이 많았어요. 엄연한 증거들이 일본군의 자료로도 남아 있는데 말이죠.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에요. 우익들이야 생각이 굳어졌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우익들은 유명한 만화가들에게 비싼 돈을 주고 자기들 주장을 담은 만화를 그리게 하고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나쁜 캐릭터로 설정해서 그리더군요. 그래서 『다시 태어나 꽃으로』번역에 더욱 몰두했습니다.”

 지금은 2월16일부터 22일까지 나눔의 집 등지에서 열리는 한일 대학생과 피해자 할머니들의 만남 행사인 ‘피스로드 (Peace Road)’ 준비로 바쁘다. 청춘을 일본군에게 뺏겨버린 할머니들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치고 있는 무라야마. 그는 언제까지 나눔의 집에 있을 예정일까?

 “정해진 것은 없지만, 앞으로 적어도 2~,3년은 더 있을 생각입니다. 할 일이 많아요.”
 일본인이기에 더욱 한일관계의 어두운 과거사를 청산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날 집회와 인터뷰에는 그의 막내 동생 요오타(龍太·19)도 함께했다. 막내는 형의 권유로 지난해부터 수시로 나눔의 집을 찾아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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