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1.5%P차 … 콜금리 인하 압력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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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는 지구촌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23일 오전 홍콩 증시가 반등하자 한 여성 중개인이 웃고 있다<左>. 22일 브라질 상파울루 선물거래소에서는 헤알화가 강세를 보이자 거래인이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 [홍콩·상파울루 AP=연합뉴스]

22일 증시 불안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한 해리 라이드 미국 민주당 상원원내대표<右>,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中> 등이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세계 금리 인하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아이투신운용 김형호 채권운용본부장은 22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단행된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실제로 미국에 이어 홍콩이 금리를 내린 데 이어 캐나다·영국·유럽연합도 금리 인하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의 정책금리(콜금리)는 미국보다 1.5%포인트나 더 높다. 시장의 예상대로 미국이 30일 금리를 추가로 내리면 양국 간 금리 차는 더 벌어진다.

 벌어진 금리 차를 좁히기 위해선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내려야 한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이 같은 전망을 반영해 금리가 떨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6.11%까지 급등했던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외국인들의 ‘사자’가 늘면서 23일 5.05%까지 떨어졌다. 이날 하루에만 0.25%포인트나 내렸다.

 하지만 국내에선 경기도 경기지만 물가 불안이 큰 문제다. 자칫 금리를 따라 내렸다가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물가만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다. 새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과 금리 인하가 겹치면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가능성도 있다. 한은의 딜레마이자 시장의 고민이다.

 ◇벌어진 한·미 금리 차이=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낮을 경우 미국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한국의 주식과 채권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많아진다. 실제로 양국 간 금리 차가 3%포인트까지 벌어졌던 2003년 외국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13조7689억원어치 사들였다. 당시 외국인투자자의 국내 증시 비중도 42%로 역대 최고였다.

 우리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센터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대거 팔고 있지만 국내외 금리 차가 계속 벌어지면 주식 순매수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팔고 있지만 새해 들어 외국인들이 국내 채권을 대거 사들이고 있는 것도 국내외 금리 차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채권 금리가 떨어지면서 채권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채권 매입을 부추겼다.

 산은자산운용 김만수 채권운용팀장은 “외국인투자자는 낮은 금리로 조달한 달러를 국내 스와프 시장에서 원화로 바꾼 뒤 국고채를 사면 7%가 넘는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한·미 금리 차가 벌어지면 이 같은 투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 콜금리 내릴까=금리는 장기 금리가 높고, 단기 금리는 낮은 게 정상이다. 하지만 국고채 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콜금리는 한은이 5%로 묶어 놓은 바람에 시장 금리가 뒤죽박죽이다. 3년물 국고채 금리는 하루짜리 콜금리에 비해 불과 0.05%포인트 높다. 10년물 국고채 금리와 1년물 국고채 금리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국내외 금리 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은 경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차를 노린 달러 자금이 지나치게 많이 유입될 경우 주식·채권의 거품이 생길 수 있다. 많이 늘어난 외화자금이 부동산 등으로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시장의 예상대로 한은이 금리 인하란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고민은 국내외 금리 차가 확대됐다는 것을 제외하곤 금리 인하 요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국제 유가,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석 달 연속 3%대의 상승률을 보였다. 올 상반기에 물가상승률이 4%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은은 24일 열리는 정례 금융통화위원회에 금리 조정 등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긴급 안건을 상정하진 않기로 했다. 이승일 한은 부총재는 “금리는 물가·경기·시중 유동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며 “당장 금리로 대응할 상황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은이 앞장서 금리를 내리진 않겠지만 일정 시차를 두고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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