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해들리 방에 들른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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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 중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2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특사인 정몽준 의원에게 “이 당선인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방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백악관을 방문해 부시 대통령을 면담한 정 특사는 이같이 밝혔다. 정 의원은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관계를 복원하겠다’는 이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했고, 부시 대통령은 ‘아주 고맙다’고 답했다”며 “이 당선인은 부시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에 방한해줄 것도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 특사는 “부시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양국이 공조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조속히 비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또 미국의 전시작전권 이양 재협상 가능성과 관련해선 “우리(한국) 쪽에서 먼저 (이양을) 요청해 합의된 것을 다시 (재협상하자고)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며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에선 이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특사는 “미국인과 만나본 결과 그동안 한국이 한·미관계 현안을 놓고 미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한국은 미국과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몇 안 되는 국가이자 동맹관계인 만큼 새 정부는 미국과 대화 채널을 강화하는 데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 격의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통역 없이 약 20분간 한·미관계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며 “전 세계를 상대하는 미국 대통령이 20분간 시간을 내준 것은 그만큼 한·미관계를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면담은 정 특사 일행이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나는 동안 부시 대통령이 우연히 들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미국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이 아닌 후보나 야당 정치인은 거의 만나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현직 대통령이 아닌 당선인이 보낸 특사를 만나준 것은 파격이다. 다만 해들리 보좌관의 방을 이용해 외교적 의전의 틀을 깨지 않고, 현직 대통령의 체면도 살려주면서 이 당선인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보인 것이다.

정 특사 측은 방미 전 백악관 측에 부시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으나 확답을 받지 못하다 이날 면담이 전격 성사됐다.

 지난달 20일 이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거론된 정상 골프 회동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요즘 골프를 잘 치지 않는다”며 완곡하게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으로 현지에 파견된 미군들이 희생과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골프를 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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