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마음의 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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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4강전 2국 하이라이트>
○·황이중 6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장면도(70∼91)=이 판에선 아직도 우세했던 백의 후광을 느낄 수 있다. 우하에서 백의 실리가 흑의 실리로 둔갑되었는데도 백은 아직 만만치 않은 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좋은 판이었다. 문제는 황이중 6단의 마음이다. 그는 눈 녹듯 사라진 우세를 회고하며 가슴 아파하고 있다. 사라진 우세는 잃어버린 보석과 같아서 후회와 자책이 없을 수 없는 것. 그러나 그것이 기어이 병으로 이르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은 승부사의 몫이다.

 70으로 하나 찔러보고 72로 붙여간다. 백△으로 젖혀 이을 때 약속했던 깨소금 같은 부수입이다. 그러나 이 끝내기에 홀려 우하에서 노림수를 당했으니 지금은 아무 맛도 없다. 77부터 이세돌 9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79를 선수해버린 것은(아직 사활에 뒷맛이 있다) 이제 그만 정리하고 계가해보자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상대의 이런 태도가 황이중의 마음을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김지석 4단의 말로는 “아직 미세하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집을 세어보면 흑이 약 50집이고 백도 45집은 된다. 도처에서 흑이 두터운 기운을 품어내고 있는 것이 걸리지만 덤도 있으므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상대가 낙관 무드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당연히 칼이 무디어진다) 호재라 할 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현실은 턱없이 흘러가고 만다.

 우선 83을 당한 것이 아팠다. 백이 먼저 선수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84도 엉거주춤한 수. 하변 쪽의 엷음이 걸렸다면 확실하게 한 수 보강해야 옳았다. 89에 이은 91의 절단을 당하며 백은 드디어 자포자기의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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