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선관위, 盧대통령 불법개입 왜 못막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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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통령의 명백한 선거개입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회견에서 노골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고, 심지어 "대통령이 잘해서 (열린)우리당에 표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60조에는 공무원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공무원에 포함된다. 그럼에도 선관위가 관계자의 발언 형식으로 "대통령의 발언이 특정 정당의 지지를 호소한 것인지 검토를 해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비겁하다.

선관위는 그동안 17대 총선에서 선거부정을 막기 위해 위원회의 존폐를 걸고 단속에 나서겠다고 다짐해 왔다. 유지담 선관위원장은 신년사에서 "4월 15일은 병든 정치 수술하는 날"이라며 "선거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 대상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선관위의 처사를 단호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무총리에게는 "공무원의 선거 간여 사례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더니 대통령의 선거 발언은 어물어물 넘어가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적도 없다. 과거의 집권자들은 당 총재 자격으로 정당 행사에서 선거에 대해 언급해 위법 논란을 피해 왔지만 盧대통령은 여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선관위는 좀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힘없는 후보들에게는 눈을 부라리고 권력에 대해서는 옆걸음을 쳐서야 무슨 권위가 서겠는가. 선관위는 헌법기구로, 선관위원에 대해선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는다'고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선관위가 대통령의 불법 혐의를 애써 못본 체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번 총선이 제대로 될 수 없다. 추기경마저 관권선거를 우려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