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북녘동포>12.늘어나는 강.절도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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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생활조절위원회.
주민생활을 조절하기 우한 당국의 무슨 위원회 같은 이명칭이 알고보면 도둑을 뜻하는 은어다.
"청진에 생활조절위원회가 출현해 당간부집,화교집,갑자기 부자가 된집등을 털고 벽에 서로 나눠 먹읍시다.생활조절위원회 라고 써놓아 유명해졌다.
어느 화교집을 털었는뎨 이불장 서랍에 1백원짜리 돈이 꽉 찼더라는 소문도 자자했다. 도둑질하다 체포되면 10년정도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진다."(엄만규.38) 사람 사는곳에 범죄는 있게 마련이라 북한이라고 예외일수는 없다. 다만 범죄실태가 외부 관측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점이 주목거리다. 절도.강도등 일반범죄와 강간사건이 날로 늘어 치안을 위협하지만 주민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범죄증가가 경제난과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주민 대다수가 어떤 형태로든 불법행위와 관련돼 생계를 꾸려나가는 처지에서 남의 도둑질에 신경쓸 형편이 못된다는 것이다.
귀순자들의 증언-.
『배가 고파 훔치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鄭基海.52),『강냉이.신발 도둑질은 너무 많아 안전부가 수사할 엄두도 안낸다.
』(黃光鐵.21) 집 털리는 대상이 주로 당.정 간부들 혹은 북송동포.화교.외화벌이 일꾼등「갑작부자」들이어서 주민들은「강건너 불」혹은「후련하다」는 반응이라는 것.
◇활개치는 생활조절위원회=80년대 초반부터 생활조절위원회라는도둑무리들이 전역에서 활개치고 있음은 여러 귀순자에게서 확인된다.「위원회」이름까지 붙었다고 해서 조직의 결성까지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활조절위원회라는 의적들이 간부집만 터는게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평양에서는 80년대 말에 나타나 종종 화젯거리가 되곤 했다.』(김명철) 『북한의 주먹세계에서 유명한 안주에서 생활조절위원회를 내걸고 부잣집을 털어 연탄.쌀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줘 호평을 받는 일도 있었다.이들은 안전원.수사관에게 테러를 가하기도 한다.』(白榮吉.25) 『만포에서는 생활조절위원회가 출몰했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개성으로 이사가서는 듣지 못했다.』(林貞姬.30) 민경(民警)하사 김선일(金善日.32)씨는『87~88년 도둑들이 잘사는 집만 턴후「골고루 잘살자」고 쪽지를 남기는 사건이 많아졌다』며『군의 경우 사단 간부들이 많이 당했다』고 말한다.
생활조절위원회가 정확히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시작됐는지 귀순자들은 알지 못했다.
◇범죄 증가와 흉포화=가장 일반적인 범죄는 역시 절도.강간사건이다.고청송(高靑松.34)씨는『81~82년 평남증산군 소재 제11호 교양소에 탈영병(50%)을 제외하고는 절도와 강간미수범이 가장 많았다』고 증언한다.
『청진에서 돈을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남의 돈이나 마찬가지다.보통 안주머니나 전대를 찬다.장마당에서도 돈을 잘 꺼내지 않으며 돈을 소매치기 당할까 긴장한다.
장마당에서「당상」(김일성 배지)이 인민복차림은 2백~2백50원,신사복차림은 3백50~5백원에 팔리기 때문에 남의 당상을 채가는 사람이 많다.92년 청진에서 21세 청년이 길거리에서 당상을 채가려다 사람을 죽여 공개재판에서 ■형당한 일까지 있었다.』(朴秀現.28) 『함흥 시안전부 순찰대에 있는 친구가 함흥역앞에서 꽃제비(소매치기)에게「당상 좀 구해오라」고 하니까 1시간만에 구해왔다.』(고청송) 『소매치기들이 북송동포나 방북한 재일교포를 따라다니는 일이 많다.』(金永成.61) 『평양에서 87년께 간부집.북송동포집에서 외화를 탈취하고 살인을 저지른 강도범들을 공개재판에 회부해 화형당하는 일까지 있었다.』(高雲氣.45) 『열차안이 굉장히 붐벼 도둑.소매치기가 많고 강간도 간혹 벌어진다.물건을 지닌 승객은 잠들면 안된다.물건끼리서로 묶어놓기도 하고 의자에 동여매기도 한다.승객들은 열차 도둑들을 보고도 보복이 두려워 아무 소리 못한다.』(박수현) 『돌격대원 90%는 도둑이다.오죽하면 인민들 사이에「돌격대.인민군대 가는 길 사방 백리간에 남는게 없다」는 말이 돌겠는가.』(김형만.21.가명) 『돌격대 범죄에 도둑질.강도.강간이 많고인근 민가에서 돼지.닭을 훔치거나 김치를 퍼오는게 가장 흔하다.』(백영길) 『원산에서 92년 여름 귀국자 집에 강도가 들어녹음기.돈을 강탈하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등 강도사건이 늘고 있다.어린이 유괴및 살인사건도 93~94년에 10여건 일어났다.
노상강도도 흔하다.』(김동만.43.가명) 권총강도가 등장하고 강도사건은 살인으로 이어지는 추세다.
함흥안전원 출신 여만철(呂萬鐵.51)씨는『도안전국 화학대(전시에 화학물질 대비담당)소속 하사관 두명이 권총을 갖고 귀국자집을 털러 들어갔다 태권도를 익힌 귀국자 집 아들과 격투가 붙어 권총을 쏘는 사건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동만씨는『평양에서 93년 무역은행 총재 집이 털렸는데 둘째아들의 군대 전우였던 김책공대 대학생이 범인으로 체포됐다』면서『범인은 녹음기와 돈 3백~4백원을 훔치느라 옛 전우의 어머니를 살해했다가 체포돼 총살당했다』고 한다.
당간부의 승용차까지 털린다.임정희씨는『젊은이들이 승용차를 세워 돈.물건을 털어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주민들이 영화「임꺽정」의 영향이 크다고 수근거렸다』고 한다.
◇강간사건의 증가=정기해씨는『성범죄도 80년대 이후 확실히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황광철씨는『여자 숫자가 많고 안전부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김광욱(金光旭.27)씨는『탄광 노동자들이나 돌격대원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성추행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말했다.
고청송씨는『강계에서 유부녀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남편을 교살하고 공개재판에서 교수형을 언도받았다』고 전했다.
이옥금씨는『강간사건은 여자가 죽었을 때나 주민들에게 알려지고죽지 않았을 경우 아직도 창피하다고 신고하지 않는 분위기』라고전한다. 『함흥시 회상구역에서는 매달 적어도 2~3건,많을 때는 4~5건의 변시체가 발견된다.변사자는 대개 굶어죽은 노인이나 강간 살해된 여자들이다.
93년 함흥시 회상구역 금실동에서 발견된 강간살해 여자시체 2구의 범인은 못잡았다.주로 들판이나 구역내의 평수다리 아래 등에서 발견된다.』(여만철) ◇직장 물건훔치기의 만연=절도사건의 가장 보편적 예는 자신의 직장에서 물자를 빼돌리는 행위다.
식량및 생필품의 부족이 낳은 결과라는 것.
고청송씨는『북한에선 발전소와 광산노동자들만 빼놓고는 어느 공장.기업소나 물자 빼돌리기가 기승을 부린다』며『몇몇이 짜고 한쪽에서 담너머로 물자를 넘겨주면 다른 동료들이 이를 받아 딴곳으로 숨기는 담치기가 흔하다』고 전한다.
김광욱씨는『일반노동자 보다 관리직 간부들이 공장 물자 빼돌리는 데는 선수』라며『개천탄광연합기업소 산하 탐사설비 부속품공장은 편직기.난로 등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빼돌렸다』고 말했다.
『변압기공장에 다니던 친구가 한달에 한차례 변압기를 훔쳐 장마당에 나가 팔아 3백~4백원 벌이를 했다.』(林永宣.31) 『명절을 앞두면 공장.기업소의 중간간부들이 나서 노동자들과 함께 술.식량.떡을 준비하기 위해 공장 물자를 빼돌린다.』(고청송) 『탄광에서는 관리직이 노보(노동보호)물자를 외부로 빼돌린다.채탄공들은 노보물자 10%는 항상 옆으로 샌다고 생각한다.
암시장에 나가는 노보물자는 주로 안전등.기름(옥수수 식용유).
작업복 등이다.』(황광철) 농민들은 일용품과 바꾸기 위해 식량을 상습적으로 빼돌린다.
『협동농장에서는 개인이나 분조장이 곡식을 감추는 절도행위가 늘고 다음해 농사때 농기계를 움직일 기름을 구하기 위해 작업반장도 적극 나서 곡물을 비상수단으로 숨긴다.
작업반장과 협동농장관리위원장은 상급기관의 협동농장 검열때 검열원들에게 비축미를 풀어 무마해야 하기 때문에 식량은닉이 정당화된다.결국 관리위원장에서 농민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식량도둑이 되고 만다.85년 이후에 심해졌다.』(여만철) 이렇게 되다보니 『북한 당국은 생산된 식량의 60~70%밖에 장악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임영선)고 한다.
윤웅(尹雄.29)씨는『청진광산금속대학 구내에서 심심치않게 절도사건이 일어났다』며『주로 전동기.TV.녹음기 등이 없어지는데대개 학생들의 소행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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