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획 날짜·위치 휴대폰서 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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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수산물 유통 벤처기업인 ‘올래씨푸드’의 이호성 대표가 포장이 끝난 옥돔 상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양성철 기자]

 21일 밤 제주시 연동 신시가지 ‘올래씨푸드’의 매장 겸 사무실.

 늦은 시간인데도 이호성(38) 대표는 작업복 차림에 손놀림이 여전히 바빴다. 그는 “신뢰를 팔겠다고 나선 일인데 포장상태까지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서 하나뿐인 옥돔을 드시고 있습니다’라고 사무실 벽에 걸린 현수막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이 대표는 2년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뒤 1996년 제주도가 출자해 만든 공기업 ㈜제주교역에 입사했다.

 그러나 회사는 98년 환란사태 이후 삐걱대기 시작했다. ‘제주 농·수·축산물 해외교역의 선두주자’를 자임한 회사였지만, 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쳐 갔다.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병원 진단도 받았다.

 그는 2005년 가을 사표를 냈다. 그리고 3개월여 동안 방황하다 단돈 100만원을 손에 쥐고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났다. 행선지는 영국. 제주도와 같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 나라로 가 보면 무언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런던서 한 대형 매장을 둘러보던 그는 무릎을 쳤다. 수산물 코너엔 생선마다 이를 잡은 선장의 얼굴과 어획 위치까지 표시한 홍보물이 걸려 있었다.

 “소비자에게 믿음을 전달하면 판매가 훨씬 잘 될 것 같다 싶더라구요.”

 그는 제주로 돌아와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아이템은 옥돔. 안동의 간고등어나 영광의 굴비처럼 제주의 대표적 수산물이지만 의외로 믿을 만한 물건을 구하기 어렵다는 데 착안했다.

 고향의 인맥을 총동원했다. IT(정보통신) 분야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부탁해 생산 이력 시스템을 개발했다. 제품에 고유번호 등을 입력, 소비자가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통해 어획 일시·위치와 배·선장·가공장소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또 500만원을 들여 1t짜리 중고 냉동 탑 차를 구입했다. 상표는 ‘집으로 가는 골목 안길’이란 뜻의 제주 사투리 ‘올래’에서 따 왔다.

 2006년 2월 드디어 창업, 물건을 떼 올 어선 선주·선장를 찾아 나섰지만 처음엔 모두 퇴짜를 놓았다. 달래고 설득하고 젊은 패기로 강짜도 부려 그 해 4월 서귀포시 남원읍 선장 3명과 겨우 손을 잡았다.

 포장과 디자인은 ‘제주다운’ 고급을 추구했다. 삼림욕장에서 기르는 제주산 삼나무가 건강에 좋고 질도 좋다는 노인들의 말에 따라 삼나무 상자에 디자인을 입혔다.

 5월엔 주변의 도움으로 50㎡짜리 매장 겸 사무실도 마련했다. 휴대전화로 상품 정보 조회가 되는 기술로 6월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벤처기업 인증을 받았다. 제주지방중소기업청으로부터는 신기술 기업으로 지정됐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왔다. 제주도 공무원들에게 매달려 7월 서울 코엑스 전시장서 열린 국제식품박람회에 참가했다가 수산 대기업인 동원산업의 눈에 띄었다.

 ‘올래씨푸드’의 옥돔과 고등어 등은 9월부터 동원의 이름으로 유명 백화점의 진열대에 올랐다. 물꼬가 터지자 납품하는 업체가 계속 늘어 이젠 6곳이나 된다. 모두 굵직한 대기업 쇼핑몰이다.

 상품 주문이 늘면서 계약한 선장도 이제 30명에 이른다. 그래도 물량이 모자라 서귀포수협에서도 고기를 떼 온다. 매출도 급상승했다. 창업 첫 해인 2006년 5000만원이었지만 지난해는 20배인 10억원이나 됐다. 올해는 15억원이 목표다.

 이 대표는 “앞으로 서울 매장 등에 스크린을 설치, 소비자들이 조업 장면부터 실시간 영상으로 보면서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할 참”이라며 “그때쯤이면 세계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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