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의 자식 내 자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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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친자식인줄 알고 길렀던 아이가 실은 아내의 부정에 의한 남의자식임이 드러났을 때 그 아이는 남의 아이인가,내 아이인가.현행 민법은 아버지가 출생 1년안에 친생부인(親生否認)청구소송을내지 않는 한 그 아이는 실제론 「남의 자식」 이라도 법적으론「내 아이」로 남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때문에 徐모씨는 두살된 아들이 자기 자식이 아님을 확인하고도 내 아이로 평생을 호적에 올려놓아두어야 한다는 법원의 판정을 받았다.
상식으론 얼른 납득되지 않는 이런 법규정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법제정 당시의 실수였을까.그렇지는 않다.실수가 아니라 전체「가정의 안정」을 우선시한 의도적인 법규정이었다.프로이트는 세상의 거의 모든 아버지는 적어도 한두번쯤은 자기 자식이 과연 정말로 내 자식일까 하는 의심을 길든 짧든 하게 된다고 말했다.만약 그런 의심을 단지 순간적인 의심으로 끝내지 않고 모두가나서서 의학적인 감정을 받으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의심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부부간도,아버지와 자식간도 이상해져버려 설사 친자임이 확인돼도 그 가정의 분위기는 온전치 않을 수 있다.
또 어차피 어머니와는 달리 아버지쪽은 친자여부를 명확히 가릴방법이 아직은 없다.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B형과 O형 사이에서A형의 아이가 태어났기에 망정이지 B형이나 O형이었다면 친자식으로 믿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민법상의 일견 경직돼 보이는 규정은 그래서 「가정의 안정」쪽을 택해버린 것이다.1년이 지나면 무조건 친자식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이 가정을 위해서도,사회를 위해서도 낫다는 취지였다.
그래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그렇지만…」 할 것이다.
「의심한 날부터 1년이내」가 합리적이지 않은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지만 「낳은 정」과 「기른 정」의 문제는 또 어찌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도 제기된다.
민법엔 이처럼 간단히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동성동본 혼인문제,간통죄 문제등이 그것이다.법원으로서도,일반 사회로서도심도있는 논의를 벌여볼 좋은 주제를 갖게 됐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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